SK하이닉스 “HBM3E 수율 80% 근접”, HBM 선두 굳히기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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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업비밀인 '수율' 언론에 공개하며 자신감 드러내
엔비디아 독점 공급에 차세대 제품 조기 양산 박차
삼성전자, 파운드리·HBM에서 선두와 격차 벌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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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하이닉스의 12단 HBM3E 제품/사진=SK하이닉스

SK하이닉스가 이례적으로 인공지능(AI) 반도체의 핵심 부품인 HBM3E(5세대 고대역폭 메모리) D램 ‘수율(생산품 대비 양품 비율)’이 80%에 근접했다고 밝혔다. 업계에서 예상한 60~70%를 크게 뛰어넘은 수치다. SK하이닉스는 통상 영업비밀에 해당하는 수율을 언론에 공개하며 HBM 시장에서의 경쟁에 자신감을 드러내는 모습이다.

SK하이닉스 “수율 높여 생산 시간 50% 단축”

23일 업계에 따르면 권재순 SK하이닉스 수율담당은 최근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와 인터뷰에서 “최신 HBM3E 칩이 목표 수율인 80%에 근접했다”며 “이를 통해 생산에 필요한 시간을 50% 단축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SK하이닉스가 HBM3E 수율 정보를 공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수율’은 웨이퍼 한 장에 설계된 최대 칩의 개수 대비 실제 생산된 정상 칩의 개수로 계산하는데, 수율이 높을수록 생산성이 높아지고 이는 곧 기업의 마진과 직결된다. 최근 반도체 패권 경쟁에서 수율이 기업의 핵심 경쟁력이자 영업비밀로 인식되고 있어 대외적으로 공개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럼에도 SK하이닉스가 수율을 대외에 공개한 것은 그만큼 HBM 생산능력에 자신감이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HBM은 여러 개의 D램을 수직을 쌓는 만큼 한 번의 실수로도 제품 전체를 폐기할 수 있어 생산 난도가 높다. 따라서 높은 수율은 반도체 회사가 보유한 첨단 공정의 기술력과 안정성을 가늠하는 척도가 된다. 당초 반도체 업계에서는 SK하이닉스의 HBM D램 수율을 60~70% 수준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실제 HBM3E 수율이 80% 수준에 이르는 것으로 확인되면서 SK하이닉스의 HBM 경쟁력이 시장 예상치보다 우수한 것으로 드러났다.

현재 SK하이닉스는 AI 반도체 시장을 주도하는 엔비디아에 HBM3를 독점 공급하는 등 사실상 HBM 시장의 선두 주자로 자리매김했다. 이런 가운데 올해는 차세대 제품의 조기 양산을 통해 시장 입지 다지기에 주력하고 있다. 앞서 지난 2일 경기도 이천 SK하이닉스 본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는 “HBM 경쟁력을 더욱 강화해 AI 메모리 선두 주자로서의 입지를 더욱 공고히 하겠다”며 “세계 최고 성능의 ‘HBM3E’ 12단 제품의 샘플을 이달 내 제공하고, 올해 3분기 양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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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엔비디아 수주 실패하며 SK와의 격차 커져

SK하이닉스가 HBM3 생산을 확대하고 차세대 제품의 조기 양산에 돌입하면서 엔비디아향 납품을 추진하는 삼성전자와의 선두 경쟁 구도에도 불이 붙을 전망이다. SK하이닉스는 당초 HBM3E 생산 확대를 위해 HBM3 라인 전환을 추진해 왔다. 엔비디아 공급망에 진입하려는 삼성전자과 마이크론의 시도가 가시화된 만큼 HBM3E를 적기 양산해 시장 주도권을 쥐겠다는 의도에서다. 다만 엔비디아의 물량 추가 공급 요청에 따라 기존 HBM3 물량을 줄이지 않고 기존 후공정 효율 강화, 공동개발라인 생산 전환 등을 통해 대응하는 방안을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HBM 시장 선점에 실패한 삼성전자는 반도체 부문의 수장을 전격 교체하면서 분위기 반전에 나섰다.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엔비디아의 샘플 테스트를 계속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그 사이 HBM 시장에서 SK하이닉스와의 점유율 격차도 점차 커지고 있다. 메리츠증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HBM 시장 점유율은 SK하이닉스 59%, 삼성전자 37%인 것으로 추정된다. HBM 기술경쟁력 측면에서도 SK하이닉스와 비교할 때 부족한 측면이 있다는 평가다. 실제로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HBM3E 8단은 빨라야 3분기, 12단은 4분기가 지나서야 엔비디아에 납품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전자는 HBM과 함께 반도체 부문의 또 다른 핵심 축으로 꼽히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부문에서도 열세를 보이고 있다. 대형 고객사 유치에 어려움을 겪으며 격차를 좀처럼 좁히지 못하고 있는 모양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지난해 4분기 파운드리 점유율은 11.3%로 61.2%를 기록한 TSMC와의 점유율 격차는 직전 분기 45.5%P에서 49.9%P로 더 벌어졌다.

삼성 40%대 수율, 적용하는 기술도 상이

삼성전자가 HBM 시장에서 SK하이닉스와의 격차를 줄이고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수율을 높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신영증권 등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HBM3E 양산 수율은 40%대로 추정된다. 삼성전자의 수율이 SK하이닉스보다 낮다는 것은 삼성전자가 HBM3E를 생산하는 데 더 많은 원가를 투입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수율 1~2% 차이에도 수백억원의 매출 차이가 발생하는 만큼 삼성전자 HBM 수익성도 SK하이닉스보다 낮을 수밖에 없는 셈이다.

이를 두고 HBM 생산에 적용한 기술의 차이로 보는 시각도 있다. SK하이닉스는 D램 칩을 쌓는데 ‘MR-MUF’ 방식을 적용하고 있다. MR-MUF는 우선 회로도를 인쇄해 D램 칩을 쌓은 후 액체 보호제를 주입하는 방식이다. 이와 달리 삼성전자와 마이크론이 채택한 ‘TC-NCF’ 방식은 칩 사이에 얇은 비전도성 필름(NCF)을 넣은 후 열로 압착하는 방식이다.

이에 일각에서는 SK하이닉스의 높은 수율의 비결로 MR-MUF를 꼽으며 TC-NCF이 MR-MUF보다 기술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런 지적에 대해 삼성전자는 “독자 개발한 NCF 기술은 칩 전면을 열과 하중을 인가해 본딩하기 떄문에 칩 휘어짐을 제어할 수 있어 고적층에 더 유리하다”며 “12단 이상 제품에서 해당 기술의 경쟁력은 더 높을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이르면 2025년부터 양산할 예정인 HBM4의 수율도 업계의 관심사다. 반도체 업체들은 HBM4에 새로운 공정인 ‘하이브리드 본딩’ 기술의 투입을 추진하고 있지만 해당 기술로는 수율 상 한계가 있어 고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김귀욱 SK하이닉스 HBM 첨단 기술팀장도 “HBM4에서 주력 공정인 MR-MUF 방식은 물론 하이브리드 본딩도 연구하고 있지만, 이 방식은 수율이 높지 않은 문제가 있다”고 설명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