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그나로크 확률 조작 조사하겠다” 정부, 게임 내 확률형 아이템 규제 본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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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거래위원회, 라그나로크 확률 조작 사태 조사 착수
지난달 게임산업법 개정 이후 최초 조사, 차후 업계 영향은
"확률형 아이템은 도박이다" 세계 각국의 규제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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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거래위원회가 ‘라그나로크 온라인(이하 라그나로크)’의 게임 내 아이템 확률 조작 의혹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지난달 22일 개정 게임산업법·시행령이 시행된 이후 최초로 확률형 아이템 관련 조사가 시작된 것이다. 게임 내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정부의 규제 움직임이 본격화하는 가운데, 업계에서는 라그나로크를 시작으로 게임 시장 전반까지 조사가 확대될 수 있다는 전망이 흘러나온다.

개정 게임산업법 시행 후 논란 본격화

라그나로크의 확률 조작 논란은 지난달 22일 시행된 개정 게임산업법·시행령에서 출발한다. 지난달 22일, 문화체육관광부는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제33조 제2항 및 동법 시행령 제19조의2’가 시행됨에 따라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이 투명하게 공개된다고 밝혔다. 이때 ‘확률형 아이템’은 게임 이용자가 직·간접적으로 유상 구매할 수 있는 아이템 중 구체적 종류·효과·성능 등이 우연(확률)에 따라 결정되는 것을 말한다.

개정 게임산업법에 따르면, 게임물을 제작·배급·제공하는 자(이하 게임 사업자) 중 3년간 연평균 매출액이 1억원 이상인 자는 확률형 아이템의 종류와 확률 정보를 의무적으로 공개해야 한다. 이 같은 의무를 위반한 사실이 적발될 경우 1차로 게임물관리위원회가 시정 요청을 전달하며, 2·3차로 문화체육관광부가 시정 권고 및 시정 명령 조치를 취하게 된다. 그럼에도 관련 의무가 이행되지 않을 경우 게임 사업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된다.

개정안 시행을 앞두고 각 게임사는 확률형 아이템의 정보를 속속 공개하기 시작했다. 라그나로크의 운영사인 그라비티 역시 지난달 20일 ‘라그나로크’의 확률형 아이템 정보를 업데이트했으며, 이후 “일부 아이템이 게임 내 정보와 일치하지 않는 부분을 발견했다”며 변경 사항을 공개한 바 있다. 문제는 관련 정보 변경 후 100개 이상에 달하는 아이템의 확률 정보가 변했다는 점이다. ‘마이스터 스톤·’엘레멘탈 마스터 스톤’·’리 로드 스톤’ 등 일부 아이템은 등장확률이 0.8%에서 0.1%로 대폭 수정되기도 했다. 

확률형 아이템과 ‘조작’

대대적인 확률 정보 변경이 확률 조작 논란을 낳자, 그라비티 관계자는 “아이템 확률 고지가 필요한 경우 시뮬레이션으로 검증 절차를 진행하는데, 일부 미흡한 점이 있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용자들은 의심을 거두지 않았고, 끝내 공정거래위원회에 민원을 제기했다. 이에 공정거래위원회는 차후 그라비티의 잘못된 확률 공개로 인해 소비자들이 입은 피해의 규모, 소비자를 기만하는 ‘의도적 조작’의 유무 등을 들여다볼 방침이다.

업계는 라그나로크의 사례가 개정 게임산업법 시행 후 첫 조사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차후 공정거래위원회 조사가 라그나로크를 넘어 확률형 아이템을 판매하는 게임 업계 전반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지난 1월 ‘메이플스토리 과징금 부과 사태’ 이후 확률 조작에 대한 정부의 경계가 본격화한 가운데, 라그나로크의 선례가 정부의 규제 움직임을 가속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앞서 공정위는 지난 1월 넥슨코리아가 게임 메이플스토리 내에서 특정 확률형 아이템(큐브)의 성능을 고의로 조정해 부당한 이득을 챙겼다며 전자상거래법상 역대 최대 규모인 116억4,2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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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플스토리 확률 조작 논란의 중심축에 선 ‘큐브’는 캐릭터가 착용하는 장비에 사용하는 유료 아이템으로, 메이플스토리 전체 매출액의 30%를 차지하는 핵심 수익 모델이었다. 큐브의 핵심 기능은 확률적으로 장비에 부여돼 있는 ‘잠재 옵션’을 변경하거나 상위 등급으로 업그레이드하는 것이다. 큐브 상품 도입 당시 넥슨은 옵션 출현 확률을 균등하게 설정했으나, 2010년 9월 15일부터 큐브 사용 시 유저들의 선호 옵션 등장 확률을 낮췄다. 2011년 8월 4일부터 2021년 3월 4일까지는 큐브 사용 시 선호도가 높은 특정 능력치 조합이 아예 출현하지 않도록 확률 구조를 변경하기도 했다.

문제는 상기 사실이 유저들에게 일절 고지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심지어 2011년에는 “큐브의 기능에 변경 사항이 없으며 기존과 동일하다”는 내용의 거짓 공지를 내기도 했다. 2013년 7월 14일 출시된 프리미엄 상품 ‘블랙 큐브’와 관련해서도 확률 조작 문제가 불거졌다. 넥슨은 최초 블랙 큐브의 잠재 옵션 등급 상승 확률을 1.8%로 설정했지만, 이후 5개월에 걸쳐(2013년 7~12월) 그 확률을 1.4%까지 점진적으로 낮췄다. 2016년 1월에는 확률이 1%까지 미끄러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 같은 확률 감소 사실 역시 이용자에게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EU의 확률형 아이템 규제

한편 이 같은 게임 내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규제를 시행하는 것은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다. 일례로 유럽의 경우 확률형 아이템을 △게임 중독 △도박 중독 △청소년 보호 등의 문제와 연결 지어 규제하고 있다. 우리나라와 같이 확률 공개 등을 통해 ‘투명한 판매’를 유도하는 경우는 드물다는 의미다. 이들 국가는 확률형 아이템 판매 자체를 막거나, 도박성 규제·연령 제한 등을 통해 확률형 아이템이 야기할 수 있는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있다.

유럽 최초로 확률형 아이템 관련 규제를 발표한 것은 스페인이었다. 2022년 7월 스페인은 18세 이하의 미성년자가 확률형 아이템을 구매하지 못하도록 제한하고, 아이템의 가격을 게임 내 재화 대신 유로로 표기하도록 했다. 또한 확률형 아이템을 판매하는 게임의 광고 시간에도 제한을 걸었다. 독일의 경우 확률형 뽑기 아이템에 대한 법적 규제를 시행하지 않는 대신 고도의 자율 규제를 도입했다. 확률형 아이템의 판매 가격과 환금성을 판단 기준으로 삼고, 특정 조건을 충족한 상품을 ‘잠재적 도박’으로 간주해 도박과 관련한 엄격한 규정을 적용하는 식이다.

벨기에는 도박법을 적용해 확률형 아이템 판매를 전면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유료 확률형 아이템이 ‘벨기에 게임·도박법 (The Belgian Gaming and Betting act)’을 위반하는 일종의 도박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에 따라 벨기에에서 확률형 아이템을 포함한 ‘우연성 게임’을 무단 서비스할 경우 최대 80만 유로(약 11억원)의 벌금형이나 5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할 수 있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계 각국이 본격적으로 게임 내 확률형 아이템이 낳을 수 있는 부작용에 촉을 곤두세우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