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R&D 사업 ‘대규모 손질’ 단행, 예산 대폭 삭감한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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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벤처기업부, 강경한 R&D 사업 개선 의지 표명
최대 50%까지 예산 삭감, 변경 불응 시 전액 지급 불가능
혈세 낭비 비판받던 R&D 사업, 구조 개편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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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중소기업 R&D(연구개발) 예산 대규모 삭감 소식이 벤처 업계를 뒤흔든 가운데, 중소벤처기업부가 이번 주 내로 권역별 중소기업 R&D 협약 변경 설명회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예산 삭감에 대한 각 업계의 불만이 커지고 있음에도 불구, “협약 변경을 수용하지 않을 경우 올해 연구비를 지급할 수 없다”며 강수를 두기도 했다. 투자 대비 성과를 내지 못하는 정부 R&D 사업에 대한 손질 의지를 단호하게 표출한 것이다.

예산 대폭 삭감, 불응 시 연구비 끊긴다

중소기업 R&D 협약 변경 설명회는 2024년도 중소기업 R&D 사업의 정부 출연금을 조정하고, 협약 변경 사항을 공유하기 위해 진행된다. 올해 정부의 중소기업 R&D 투입 예산은 1조4,097억원으로, 지난해(1조8,247억원) 대비 22.7% 감소한 바 있다. 삭감된 예산은 △민간 중심 R&D △전략기술 분야 R&D △글로벌 혁신기업 R&D 등 핵심 분야에 집중적으로 배정됐다.

반면 △중소기업기술협력개발 △소재·부품·장비 전략협력 기술개발 등 장기간 사업을 진행하는 ‘계속과제’의 경우 예산 편성 금액이 6개월 치에 그쳤다. 중기부는 올해 계속과제 예산이 절반으로 감소한 점을 고려, 연구개발기관 간 협의를 거쳐 사업별 협약 변경 수용·중단신청·불응 등을 판단하기로 했다. 예산 감소를 이유로 사업이 변경·중단되는 경우에 대해서는 제재를 가하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문제는 과제 수행 중소기업이 협약 변경에 불응할 경우 올해 연구비 전반을 지급받을 수 없다는 점이다. 자체적으로 R&D 자금을 충당할 수 없는 중소기업은 사실상 협약 변경을 수용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협약 변경이 필요한 사업은 창업성장기술개발, 중소기업기술혁신개발 등 총 24개며, 이 중 22개 사업의 예산이 50% 삭감됐다. 예산 삭감 대상에 포함된 중기부 소관 R&D 과제는 4,000여 개에 육박한다.

막대한 R&D 투자, 초라한 결실

중기부는 업계의 불만을 이해하면서도 R&D 개편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비효율적인 정부 R&D 사업에 대한 강경한 개선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정부 R&D 예산은 민간이 투자하긴 어렵지만, 국가적으로 반드시 필요한 공공재적 성격의 기술에 투입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국내 벤처 업계는 이전부터 이 같은 정부 R&D 예산을 불필요한 곳에 낭비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실제로 정부 R&D 예산은 자체 생존 여력이 없는 ‘좀비 기업’의 생존자금으로 활용되는가 하면, 특정 민간 업체의 수익성에 초점을 맞춘 기술 개발에 남용되기도 한다.

이는 비단 벤처 업계에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다. 정부 R&D 예산의 절반가량을 배정받는 정부출연연구기관의 경우, 사실상 무의미한 ‘장롱 특허’를 찍어내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실제 대한변리사회가 2021년 19개 정부출연연구기관이 특허청에 등록한 384건의 특허를 10개 등급으로 나눠 분석한 결과, 가장 우수한 1등급은 특허는 0개, 2등급은 1개에 불과했다. 절반 이상의 특허는 5·6등급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57.8%).

대한변리사회는 5등급 이하 특허는 특허 ‘등록’까지는 가능하지만, 실질적인 사업화가 어렵다고 판단한다. 사실상 출연연이 등록한 특허 대부분이 장롱 특허라는 것이다. GDP 대비 정부 R&D 투자 비중(1.33%)과 정부 총지출 대비 R&D 투자 비율(4.9%)이 각각 세계 1위(2020년 기준)를 달리는 우리나라 R&D 사업의 현주소다. 이번 정부의 R&D 예산 삭감은 이 같은 고질적인 R&D 사업의 ‘혈세 낭비’ 굴레를 끊어내기 위한 시도로 풀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