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줄 끊길’ 위기 처한 비대면 진료 스타트업, 尹에 “이딴 게 규제 개혁?” 일갈

비대면 진료, ‘재진 환자 중심’으로 사실상 확정 원산협 “비대면 진료 수요·효용성 이미 입증됐다” 초진환자 비대면 진료 금지는 주요국 흐름 역행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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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격의료산업협의회 장지호 회장이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실에 ‘대통령께 보내는 호소문’을 전달하고 있다/사진=원격의료산업협의회

비대면 진료 플랫폼 스타트업들이 내달부터 시작되는 정부의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에 대한 전면 재검토를 요청하는 호소문을 발표했다. 비대면 진료는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 한시적으로 허용된 제도였던 만큼 감염병 위기대응 단계가 하향되는 내달 1일부턴 다시 불법으로 돌아간다. 이에 비대면 진료 플랫폼 스타트업들은 자신들의 ‘밥줄’을 지키기 위해 애를 쓰는 모습이다.

원산협 “재진 중심 비대면 진료는 반(反) 비대면 진료 정책”

국내 2,000여 개 스타트업 단체 코리아스타트업포럼 산하의 원격의료산업협회(원산협)는 24일 ‘윤석열 대통령께 보내는 호소문’을 발표해 “당장 다음 주부터 시작되는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은 사실상 사형 선고나 다름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비대면 진료가 앞으로 일부 국민에게만 제한적으로 적용되는 셈인데, 이는 사실상 비대면 진료를 금지시키는 반(反) 비대면 진료 정책”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비대면 진료는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한시적으로 허용된 바 있으나 감염병 위기대응 단계가 하향되는 내달 1일부턴 불법으로 돌아간다. 정부가 비대면 진료의 공백을 해소하기 위해 추진하는 시범사업은 초진이 아닌 재진 중심이며, 약 배송 또한 제한된다. 이에 대해 원산협은 “몇십 년 전부터 해온 시범사업과 뭐가 다른지, 이게 규제 개혁인지 알 수가 없다”며 “현장에서 실현 불가능한 시범사업 안을 내놓으면서 전 국민을 혼란에 빠트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앞서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비대면 진료는 피할 수 없는, 받아들여야만 할 현실’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원산협은 이번 보건복지부의 시범사업이 윤 대통령의 ‘국민 모두가 비대면 진료를 누릴 수 있도록 하겠다’는 발언과 정면충돌한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비대면 진료가 필요한 국민은 멀리 있지 않다”며 “대면 진료가 어려운 환경에서 비대면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국민에게 비대면 진료를 위해 다시 대면 진료를 하라는 지침이 과연 상식에 부합하는지 묻고 싶다”고 성토했다.

‘밥줄’ 끊길 위기 처한 비대면 진료 플랫폼 스타트업들

보건복지부는 지난 17일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 추진 방안’을 통해 ‘재진 환자 중심’의 비대면 진료 제도화를 사실상 확정 지었다. 복지부의 추진 방안에 따르면 원칙적으로 특정 의원에서 특정 질환으로 1회 이상 대면 진료를 받은 재진 환자에 한해서만 시범사업 참여가 허용된다. 또 고혈압·당뇨·정신 및 행동장애·호흡기결핵·심장질환 등 만성질환관리료 산정 대상 11개 질환 환자는 1년 이내, 이외 기타 질환자는 30일 이내 대면 진료 기록이 존재해야 비대면 진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약 배송은 △섬·벽지 환자 △거동불편자 △휴일·야간 소아환자 △감염병 확진 환자 △희귀질환자에 한해 제한적으로 허용된다. 비대면 진료만 실시하는 의원, 조제용 의약품만 취급하는 약 배달 전문 약국 등은 원칙적으로 운영이 금지된다. 아울러 마약류와 오·남용 우려가 있는 의약품은 비대면 진료로 처방할 수 없다.

사실상 내달 1일은 비대면 진료 플랫폼 스타트업의 밥줄이 끊기는 순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비대면 진료 플랫폼 스타트업들은 “직장인, 워킹맘 등 1,379만 명의 국민이 만 3년간 경험했던 비대면 진료와 이를 운영했던 기업들이 모두 고사 위기에 처했다”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비대면 진료 제도화 과정에서 국민과 산업계의 목소리를 반영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지난 코로나 팬데믹 기간 동안 이뤄진 3,500만 건의 비대면 진료를 통해 비대면 진료의 안전성 및 수요가 이미 입증됐다고도 덧붙였다. 실제 원산협에 따르면 지난 비대면 진료가 한시 허용된 2020년 2월 이후 3년간 비대면 진료 이용자 수는 1,379만 명, 이용 건수는 3,661만 건에 달한다.

“비대면 진료는 세계적 흐름, 역행해선 안 돼”

일각에선 초진 환자의 비대면 진료를 금지하는 건 주요국의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란 비판도 나온다. 현재 주요 7개국(G7) 중 비대면 진료 대상을 재진 환자로 한정하는 국가는 단 한 군데도 없다. 일부 국가에서 ‘주치의 한정 진료’라는 제한을 두고 있긴 하나, 이 또한 초진 환자의 비대면 진료를 허용하는 건 마찬가지다.

미국은 코로나19 팬데믹 이전 농촌지역·재진·지정 의료시설 환자 등에 대한 비대면 진료를 허용하던 것을 넘어 팬데믹 이후 지역이나 질환, 초진 여부와 관계 없이 모두에게 비대면 진료를 허용하는 방안으로 제도를 확대시켰다. 캐나다 또한 사전에 대면 진료 이용을 신청한 환자로 한정돼 있던 비대면 진료를 전 국민 대상으로 변경했다. 일본에선 재진·고혈압 등 만성질환자만 비대면 진료를 받을 수 있었으나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초진 및 재진·만성질환·알레르기 질환·폐렴 등 다양한 환자들이 비대면 진료를 받을 수 있게 됐다. 이처럼 비대면 진료는 글로벌 추세이며 우리나라 또한 이를 따라야 한다는 게 원산협의 주장이다.

보다 소상한 논의 필요한 시점, 정부·스타트업·국민 간 교집합 찾아야

비대면 진료 플랫폼은 이미 의료법 위반 등 각종 논란으로 한번 홍역을 치른 바 있다. 의약품 오·남용 및 비급여 의약품 처방에 대한 우려는 여전히 깊다. 특히 일부 비대면 진료 서비스 플랫폼 경우 전문 의약품 광고 금지 규제를 피하기 위해 의약품 광고에 편법을 쓰고 있으며 약국 선택권도 제대로 보장하지 않고 있단 비판을 받기도 했다.

다만 비대면 진료 허용이 세계적 흐름인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당초 비대면 진료에 부정적이던 의료계에서 기류 변화가 감지된 것도 이와 일맥상통한다. 의료계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비대면 진료에 대한 강경한 반대 입장을 내비쳤으나, 최근엔 국내 의료 환경에 맞는 충분한 규제하에 제도화가 가능하단 의견을 내놓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비대면 진료의 필요성이 어느 정도 확인된 만큼 미래 의료 환경 변화를 고려할 때 비대면 진료의 제도화는 무작정 반대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제는 정부와 스타트업이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며 비대면 진료 제도 확산을 위해 노력해야 할 시점이다. 정부는 비대면 진료 제도를 어떤 과정을 거쳐 왜 이런 방식으로 결정했는지를 소상히 밝혀 스타트업 및 국민들을 납득시키고 비대면 진료 제도를 더욱 공고히 할 필요가 있다. 비대면 진료 서비스 스타트업 역시 무조건 비대면 진료가 필요하다고 강조할 것이 아니라, 보다 상세한 논의를 통해 합리적인 방향성을 찾아가야 한다.

비대면 진료가 코로나19 팬데믹 상황 아래 한시적으로 진행되던 제도임은 스타트업을 포함해 전 국민이 알고 있던 사실이다. 그런데도 팬데믹 상황이 마무리되고 난 뒤 비대면 진료가 불법으로 돌아간다는 데 극렬한 반대 의사만 내비친다면, 이는 극한의 이익을 추구하는 ‘꼰대’로 보일 수밖에 없다. 비대면 진료 서비스 스타트업들은 진정 국민을 위한 방안이 무엇인지, 또 국민의 편의성과 스타트업 간의 이익의 교집합이 어디인지를 잘 살펴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