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의결권 제치고 한 발 앞서나간 ‘민간 모펀드법’, 실질적 의미 있을까

민간 모펀드법 법적 근거 마련, 실현까지 이제 한 발짝 현실성 없는 민간 모펀드법, 업계에서도 “글쎄” 투자 혹한기 이어지는데, 민간 모펀드 의미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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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 업계가 염원하던 복수의결권이 또 한 번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발이 묶인 가운데, 중소벤처기업부가 추진 중인 민간 모펀드 설립은 법적 근거가 마련되는 등 한 발짝 나아가는 모양새를 보였다. 그러나 벤처 업계는 벤처투자 시장이 크게 위축된 상황에서 민간 모펀드 활성화는 사실상 현실성이 없다는 지적을 쏟아냈다. 업계는 가장 바라던 복수의결권보다 현실성 떨어지는 민간 모펀드 설립이 우선 실현될 가능성이 높아진 데 대한 실망감을 숨기지 못했다.

국회 법사위는 27일 전체 회의에서 벤처투자 촉진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 일명 ‘민간 모펀드법’을 가결했다. 법사위는 한무경 국민의힘 의원과 홍정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각각 대표 발의한 법안을 병합해 처리했다. 두 법안의 의안이 비슷했던 만큼 큰 골자의 법률안은 그대로 따르되 민간 모펀드의 법률 용어만 ‘민간재간접벤처투자조합’으로 변경됐다. 당초 한 의원은 ‘대규모재간접벤처투자조합’, 홍 의원은 ‘민간벤처투자모태조합’을 제시했으나 최종적으로는 두 의견을 절충한 위원장 대안이 채택된 것으로 알려졌다. 민간 모펀드법은 오는 30일 본회의를 거쳐 국무회의 공포 후 6개월 뒤인 9~10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정부, 민간 모펀드 각종 세액공제 혜택 제공

민간 모펀드란 정책금융 출자 없이 민간의 자금으로만 만든 모펀드를 뜻한다. 펀드 운용 주체는 창업투자회사, 신기술금융회사, 자산운용사, 증권사 등으로, 펀드 출자금의 70% 정도는 다른 자펀드 출자에 사용되어야 한다. 정부는 민간 모펀드 법안을 통해 최근 위축되고 있는 투자심리가 자극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정부는 민간 모펀드 조성 지원을 위해 적극적인 세제 혜택을 부여할 방침이다. 우선 국내 법인 출자자가 민간 모펀드를 통해 벤처기업에 투자할 경우 출자금의 60%와 실제 벤처기업 투자액 중 큰 금액의 5%를 세액공제할 수 있다. 벤처기업 투자액이 직전 3년 평균보다 늘었다면 증가 투자액의 3%의 추가 세액공제가 가능하다. 개인 출자자 대상의 세액공제 혜택도 마련됐다. 개인 출자자가 일반 벤처펀드에 출자할 경우 실제 투자액의 10%에 한해서만 종합소득금액을 공제할 수 있지만, 민간 모펀드 출자에 대해선 투자금이 아닌 출자금의 10%를 종합소득금액에서 공제할 수 있다.

이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모펀드 지원에 따라 제공되는 다양한 혜택을 통해 연간 4,000~5,000억원 규모의 민간 벤처모펀드가 조성될 것으로 기대된다”며 “여기에 자펀드까지 포함하면 연간 1조5,000억원 정도가 시장에 유입될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의도는 좋지만, 정작 실효성은?

민간 모펀드 도입 소식에 업계는 일단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특히 중견기업 측에서 환영의 목소리가 컸다. 한 국내 법인 관계자는 “중견기업은 운용인력이 적어 벤처펀드에 직접 투자하고 관리하기에 부담이 있다”며 “민간 모펀드를 통해 인력 운용 부담을 줄이고 벤처투자를 더 활발히 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일각에선 회의적인 반응이 쏟아진다. 시장 상황과 부대비용을 감안하면 세액공제 혜택이 그리 크지 않다는 지적이다. 한 VC(벤처캐피탈) 관계자는 “이번에 발표된 민간 모펀드 세제 혜택은 결국 기존 벤처 펀드와 다를 게 없다”며 “이 정도 세제 혜택으로는 모펀드와 벤처펀드에서 이중으로 발생하는 관리보수 부담을 덜기 어렵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개인 출자자에 제공되는 출자금 10% 소득공제도 아쉽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물론 개인투자조합(투자액 3,000만원 100% 소득공제)과 비교하면 세제 혜택이 크긴 하나, 49인 이하 조합원 제한이 있는 한 실질적으로 소득공제 혜택을 볼 수 있는 인원은 극소수일 것이라는 비판이다.

VC 투자 촉진을 위한 인센티브 대책도 아쉽다는 반응이다. 중기부는 모태자펀드 결성일로부터 3년 내 90%를 투자하는 등 목표 비율을 달성한 VC에 관리보수 등 추가 인센티브를 부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그러한 인센티브는 기존에도 있었다. 게다가 시장이 얼어붙은 지금 상황에서 투자 촉진 가이드라인이 생긴다 한들 작은 인센티브를 노리고 투자에 나설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기존에 투입된 벤처펀드와 이번 민간 모펀드가 큰 차이가 없다는 점도 지적 대상이다. 실제로 이미 국내 투자시장에선 민간 모펀드가 20년째 운용되고 있는 상태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KTOA)가 운용하는 코리아IT펀드(KIF)다. 이외에도 하나금융그룹이 모펀드 출자자로 참여한 ‘하나뉴딜국가대표성장펀드’, 현대차 계열사의 ‘현대차그룹미래차성장펀드’, 포스코 계열사들이 801억원을 출자한 ‘포스코신성장펀드’ 등 다양한 종류의 모펀드가 이미 국내에 존재하고 있다. 정부는 민간에 완전히 새로운 투자 재원이 생기는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지만 실상은 크게 의미 없는 ‘되풀이’에 불과한 셈이다.

이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의 모습/사진=중소벤처기업부

정부, VC 생태계 제대로 파악 못 하는 듯

정부는 이번 연도 모태펀드 예산을 대폭 줄이는 대신 민간 부문이 출자해 모펀드를 만드는 형태로 VC 생태계를 재구성하겠단 목표를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VC를 지탱하는 대부분의 자금은 정책자금이다. 2020년 기준 국내 VC의 정책자금 비중은 65%에 달했다. 은행권 대출 약 28%를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이다.

모태펀드 축소를 통해 정부의 역할을 줄임으로써 정부 부담을 서서히 줄여나가겠단 의도는 의미 있다. 그러나 이것이 VC 생태계 발전의 발목을 잡는다면 그 의미조차 퇴색되고 말 것이다. 자본시장의 유동성이 말라붙어가는 시점에서 민간 부문의 참여를 유도하고 더불어 VC 생태계를 발전시키겠단 정부의 구상은 모순된다. 비교적 안전하다 여겨지는 채권시장에조차 자금이 흘러가지 않는 상황에 민간 자본이 신생 스타트업의 육성에 힘을 쏟을 것 같은가. 동력이 필요한 회사는 이미 유인책 없이도 자체적으로 재원을 마련해 유망기업에 투자하고 있다. 정부가 VC 생태계를 제대로 인지하고 있는지, 이러한 유인책이 얼마나 효과를 발휘할지에 물음표가 찍힐 수밖에 없는 이유다.

현재 VC 생태계에 자금이 들어가지 않는 요인은 △안전 자산 선호 현상 팽배 △조달금리의 급격한 상승 △투자 기업의 가치 하락으로 인한 투자 손실 우려 △증시 경색 등이다. 하나 같이 조그마한 세제 혜택으로 해결될 수 없는 사안들뿐이다. 투자 경색의 심화로 ‘투자 혹한기’라는 말까지 들리고 있는 지금, 과연 민간 모펀드가 제대로 조성될 수 있을까.

업계의 시선은 대체로 부정적이다. 정부는 지원금을 쥐여주며 민간 모펀드 조성을 압박하고 있지만, 단순한 재원 지원만으로 얼어붙은 VC 생태계를 녹일 수 있을지에는 의문이 든다.  리스크는 민간에게 떠넘기고 정부는 정책적 목표만 달성하려 한다는 오명을 벗어내기 위해선 좀 더 확실하고도 명확한 해결책이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