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데이터] 영국 감세안이 낳은 환율 불안, 국내 시사점

리즈 트러스 신임 총리의 약 70조 규모 감세 정책이 파운드화 급락의 주원인 확장 재정이 자칫 인플레이션을 자극할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文 정부로부터 엄청난 적자 장부를 물려받은 상태, 정책으로는 한계 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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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미국 달러-파운드 스털링 환율/사진=구글 캡처

지난 26일 파운드화 가치가 사상 최저치를 경신했다. 한때 1.03달러까지 밀렸다가 28일 현재는 1.07달러에 거래 중이다. 이전 최저치는 37년 전인 1985년 2월 26일의 1.05달러였다.

지난 주말 리즈 트러스 신임 총리가 이끄는 내각이 발표한 약 70조원 규모의 감세 정책이 파운드화 급락의 주원인이라는 것이 외신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대규모 감세를 통해 투자를 유치하고 경제 성장률을 높이겠다는 확장 재정 정책의 일환으로 해석될 수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운드화 가치가 급락한 것이다. 이는 장기적으로는 균형 재정을 위해 세율이 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시장이 인지하고 있는 데다 단기 부양책으로 인플레이션이 심화하는 부작용이 있을 것이라는 우려가 시장에 퍼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감세를 통한 확장 정책이 물가를 잡기 위해 기준 금리를 올리고 있는 영국 중앙은행의 긴축 정책과도 어긋난다는 비판도 나왔다. 최근 영란은행(BOE)는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인상하는 빅스텝을 2차례나 밟았으나 여전히 물가 상승률이 10%대에서 내려오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을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극단적으로는 ‘1달러=1파운드’ 시대가 올 것, 혹은 ‘패리티(Parity)’마저도 깨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영국 더 타임스는 연말에 패리티, 내년에는 패리티가 깨질 것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지난 7일간 ‘영국’, ‘파운드’ 관련 키워드 클라우드/출처=㈜파비 데이터 사이언스 연구소

외환 전문가들은 쿼지 콰텡 영국 재무장관의 역량 미숙이 드러난 사례로 분석한다. 단순 인기 영합 정책을 취할 것이 아니라 통화정책과의 보조, 해외 주요 경제와의 보조를 함께 고려해야 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감세를 통한 경기 부양책이 최근의 경기침체 여파를 최소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교과서적인 안이한 기대를 했던 탓이라는 지적이다.

실제로 쿼지 콰텡 장관은 학부 경제학 교육 이후 하버드의 케네디스쿨에서 경제사학으로 박사 과정을 거친 다음 언론사 기자 경력을 쌓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실상 하버드 케네디스쿨이 고급 경제학 연구를 위한 기관이라기보다 직장인들이 쉬어간다는 경영석사(MBA)와 유사한 정책석사(MPA) 과정 위주로 돌아가는 데다, 경제학이 아닌 경제사학을 전공했다는 점을 두고 많은 전문가가 인선 초기부터 지식 부족이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다. 국내 유사 사례로는 김상조 전 공정거래위원장이 있다. 김상조 전 위원장은 서울대학교 경제학부에서 경제사학으로 박사과정을 밟았고 공정거래위원장을 역임하던 중 잇따른 정책 착오로 구설에 오른 바 있다.

9월 중 영국 10년 장기채 이자율 움직임/사진=Financial Times.com

감세 정책이 장기 이자 부담을 키울 것이라는 시장 반응은 영국 국채 10년물 금리에도 나타났다. 주말 발표 후 10년 장기채 이자율이 3.2%에서 4.4%까지 치솟았기 때문이다. 이에 영란은행이 시장에서 장기채를 구입함과 동시에 유동성을 추가 공급하는 선택을 하면서 금리는 다시 인하세로 돌아섰다. 물가 상승률이 10%를 넘으면서 연속된 빅스텝(금리 0.5%p 인상)으로 통화 긴축을 펼치던 것과 정반대 현상이다. 외환 시장 관계자는 “재정 쪽 정책 미스를 통화 정책으로 막은 셈”이라며, 잘못된 정책으로 막대한 비용을 들여서라도 수습을 해야하는 상황이 부담스러웠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러한 영란은행의 개입은 이어 미국 주식 시장의 반등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한국 정부도 경기 부양책 카드에 대한 고민이 많아질 시점이다. 미국의 지속적인 금리 인상이 당분간 예상되는 가운데, 경기 침체, 부동산 하락 등으로 인한 경기부양책에 대한 고민이 생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직접적인 확장 재정 정책이 가시화되고 있지는 않으나 최근의 지방 투기과열지구 해제를 부동산을 이용한 경기부양책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노무현 정권 출신의 한 인사는 “이명박, 박근혜, 윤석열까지, 우파 정권이 들어서면 언제나 부동산 규제를 풀어 경기를 부양하려 한다”며 잘못된 정책이라는 비판을 내놓기도 했다.

지난 7일간 ‘영국’, ‘파운드’ 관련 키워드 네트워크/출처=㈜파비 데이터 사이언스 연구소

경기 침체를 억제하기 위해 팽창 재정을 선택하는 것이 영국과 같은 부작용을 낳을 것인가에 대해서 전문가들은 대체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한 외환 전문가는 “경기 부양책이 이자율 상승 압력을 강화해 환율을 잡을 가능성도 있으나, 반대로 높은 금리로 물가 상승률을 겨우 제어하고 있는 상황에서 확장 재정이 자칫 인플레이션을 자극할 수도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결국 영국과 같은 방식으로 팽창 재정 정책으로 원화 가치가 더 평가절하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추경호 경제부총리도 확장 재정 정책이 낳을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해 수 차례 언급한 바 있다. 지난 8월 24일 추 부총리는 내년 예산안을 확장 기조에서 건전 재정으로 바꾸겠다고 발표했다. 지난 문재인 정부로부터 엄청난 재정 적자 장부를 물려받은 상태로, 경제 위기는 빚에서 나오는 만큼 더 이상 빚을 지는 것은 경제 위기를 감당할 수 있는 체력을 유지하기 어렵게 만든다는 것이다. 실제로 2023년 추경 규모도 올해보다 대폭 낮게 가져갈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지난 정권의 확장 재정 정책이 미래 세금으로 돌아오는 구조가 이미 한국 시장에 선반영되어 있다는 논리는 낸 한 금융업계 관계자는 “이미 정부가 빚이 많아 재정 긴축이 예정된 상황”이라며 “국민연금, 조선업계 등을 이용한 환율 관리 방법 말고 한국 정부가 직접 개입할 수 있는 여력이 크지 않다”는 비관론을 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