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바이오 벤처도 거품 빠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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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초반에 만났던 어느 대형은행 계열사의 VC 업계 상무가 했던 말이다.

바이오는 돈만 넣으면 4배, 5배 뿜뿜 올라가는데 IT는 요즘 별로예요

위의 발언을 했던 상무는 반도체 관련 전공과 직장 경력을 갖춘, 바이오와 IT업계에 대한 지식이 사실상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분이었다.

개발 불가능할 것 같은 의료 상품을 개발할 수 있다고 호언 장담하는 ‘테라노스’ 수준은 아니었지만, 마치 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상품을 개발하는데 명문대 의학 박사 5명, 10명이 모여있기 때문에 회사 설립 초기부터 수백 억의 가치를 인정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몇 천 억으로 가치가 뛰었다는 소문이 여러 차례 들려왔다.

최근 글로벌 자금시장 경색과 맞물려, 올 상반기에 펀딩을 마친 몇몇 바이오 벤처회사 관계자들을 만나보면, 자금줄이 막힐 뻔했으나 간신히 살아남아 천만다행이라는 말들을 한다. 반면, 올 하반기나 내년 상반기 쯤에 펀딩을 계획했던 회사들은 악조건으로 펀딩받거나, 아예 존폐의 기로에 놓였다는 소문이 돌기도 한다. 마치 ‘쏘카(SOCAR)’가 추가 투자금 확보가 어렵다고 판단하고 악조건으로 상장을 택한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상황이다.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버티기 모드로 들어가는, OTT업계의 ‘왓챠’형 바이오 벤처 업체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대신 운영자금만 겨우 확보한 상황이라 당분간 연구개발을 정상적으로 진행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것이 업계의 전망이다. 실제로 판교에서는 일부 바이오텍들이 인력을 정리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고, 최근 들어 임상을 조기 종료하거나, 임상 계획을 취소하는 등, 연구개발비 절약에 착수한 기업들도 있다.

모든 벤처기업의 도전이 마찬가지이긴 하겠지만, 특히 바이오 벤처에 가장 중요한 것은 연구개발(R&D)이다. 임상에 자금을 투입하는 것은 물론, 우수한 연구·개발인력을 확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함에도, 자금난을 맞아 인력과 핵심 R&D사업들을 포기하고 있다.

바이오 업계에서는 빠르면 올해 하반기부터 아예 폐업에 이르는 업체들이 생길 것이라는 전망이다. 모 신약 개발사 관계자는 “빠르면 올해, 늦으면 내년 초부터 폐업하는 바이오텍들이 여럿 생길 것”이라고 내다봤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의료업계 연구인력은, “교수님이 500억 펀딩받고는 정말 돈을 물 쓰듯이 쓰시더라구요. 그 연구는 제가 하던거라 PT하시던거처럼 될 수 없다는걸 제가 누구보다 잘 아는데, 이런걸 어디 가서 말할 수도 없고, 그렇게 펀딩받아서 다른 거 하시려는지 저야 교수님 속뜻을 알 수가 없으니 말을 할 수도 없구요”라며 말을 아끼기도 했다.

대부분의 VC 업체들이 연구·개발 역량을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이 없어, 단순히 벤처회사 창업자 및 주요 인력의 학벌, 학력만을 보거나, 깊이를 이해할 수 없는 논문 숫자 등으로 미루어 짐작한, 이른바 ‘눈먼 투자’를 했던 것이 이제 옥석 가리기가 진행되었다는 것이 바이오 벤처와 VC 업계의 공통된 평이다.

어쩌면 이번 기회에 두 업계 모두 제대로 구조조정이 진행되어 우수 인력만 남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바이오 업계의 발전과 VC 업계에 대한 신뢰도 회복을 위해 더 나은 선택지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