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당당치킨’ 따라 저가 치킨에 뛰어드는 대형마트

2010년 롯데마트 ‘통큰치킨’ 이후 재등장한 대형마트의 저가 치킨 고금리·고물가의 이중고에 지친 서민, 이번에는 대형마트 지지 치킨 한 마리 3만원? 소비자들 가격 거품 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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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dashu83 on Freepik

홈플러스 ‘당당치킨’

고금리·고물가의 이중고에 지친 서민이 저가 치킨을 응원하고 나서며 대형마트의 ‘저가 치킨 전쟁’이 12년 만에 재점화되는 분위기다. 포문은 올 6월 한 마리 6,990원이라는 파격가에 ‘당당치킨’을 내놓은 홈플러스가 열었다.

지난 6월 30일 첫 판매를 시작한 ‘당당치킨’은 당초 목표로 잡았던 1~2개월 물량이 1주일 만에 전량 소진되는 등 소동을 겪었다. 지난 10일까지 전국에서 팔려나간 치킨만 32만 마리다. 계산상 1분에 5마리가 팔린 셈이다.

‘당당치킨’은 ‘당일 제조·당일 판매하는 치킨’의 약자다. 홈플러스는 원가 이하로 판매하는 미끼상품이라는 업계의 지적에 손해가 없는 상품이라고 반박하면서 사실상 선전포고했다. ‘당당치킨’에 사용되는 닭은 국내산 8호 냉장 계육이다. 국내산 닭고기를 재료로 쓰고도 한 마리당 6,990원의 가격에 마진을 남겼다고 밝힌 것이다.

홈플러스는 “대량 직거래로 생닭을 들여와 부산을 비롯한 전국 132개 매장의 자체 조리시설에서 직접 조리해 박리다매로 저렴하게 판매가 가능했다”며 “저렴한 가격임에도 국내산 냉장 계육을 사용했기 때문에 신선도를 유지해 맛과 품질을 잡았고, 맛감자 토핑까지 추가했다”고 설명했다.

롯데마트 ‘한통치킨’

앞서 2010년 롯데마트는 ‘통큰치킨’이라는 이름으로 한 마리 5,000원에 한정판 제품을 내놓으며 대형마트와 치킨 프랜차이즈 간에 갈등이 빚어졌다. 당시 프랜차이즈 치킨 1마리의 가격은 1만원대 중후반으로, 3분의 1 가격으로 내놓은 롯데마트 제품에 치킨 시장이 요동쳤다. 그러나 2010 저가 치킨 전쟁은 롯데마트의 패배로 끝이 났다. 대기업이 골목상권을 침해한다는 여론이 들끓으면서 한 달도 버티지 못하고 ‘통큰치킨’은 시장에서 철수했다.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까지 나서 “롯데마트가 손해를 보고 치킨을 팔면서 영세 닭고기 판매점이 울상”이라며 압박하고 나선 여파였다.

하지만 ‘당당치킨’의 독주를 막기 위해 롯데마트는 다시 ‘통큰치킨’을 꺼내 재참전 의사를 밝혔다. 한 마리 1만5,800원에 판매 중이던 ‘한통치킨’을 11일부터 일주일간 제휴카드 결제 시 한 마리 8,800원으로 가격을 대폭 낮추며 시장 반응을 살피고 있다. 롯데마트의 ‘한통치킨’은 국내산 9~11호 냉장 계육을 쓴다. 시중 치킨의 한 마리 반 분량에 해당하는 것이다.

롯데마트는 “파트너사와 협의 후 대량으로 계육을 매입해 경쟁력 있는 가격을 유지 중”이라며 “향후에도 물가 상승 이슈와 소비자 수요에 맞춰 저렴한 델리 메뉴를 선보이겠다”고 전했다.

이마트 ‘5분 치킨’ 

이마트 역시 지난 7월부터 9,980원에 ‘5분 치킨’을 판매하고 있다. 5분 치킨 출시 이후 이마트의 7월 치킨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6% 불어났다. 9호 계육을 사용해 만든 5분 치킨은 에어프라이어 190도에 5분만 돌리면 더욱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의미를 담았다. 이마트 측은 “점도가 낮은 물 반죽 방식으로 바삭한 식감을 살렸다”고 설명했다.

업계 관계자는 “10여 년 전 대형마트에서 시중에 반값으로 치킨을 팔았을 땐 골목상권 침해 논란에 휩싸여 빠르게 접어야 했지만, 지금은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며 “결국 소비자들이 가격은 물론 맛 등을 고려해 선택하면 될 일”이라고 말했다.

‘저가 치킨’에 몰리는 소비자들  

지난 8일 오후 2시 50분께 서울 등촌동 홈플러스 강서점 2층에 위치한 치킨 매대 앞에는 고객 40명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오후 3시 정각이 되자 조리실에서 카트에 실려 나온 ‘두마리치킨’ 40개가 직원들이 매대에 올려놓기 무섭게 매진됐다.

지난 9일 오전 11시 40분 홈플러스 월드컵점에서도 장맛비가 쏟아짐에도 불구하고 즉석조리식품(델리) 코너 앞에는 홈플러스의 6,990원 치킨인 ‘당당치킨’ 구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30대 직장인 김 씨는 “치킨 프랜차이즈에 비해 마트 치킨 맛이 떨어지는 게 사실이지만 가격이 2배 넘게 차이 나는 걸 감안하면 소비자에게는 합리적인 선택”이라며 “마트 치킨의 인기는 치킨 프랜차이즈 가격에 대한 소비자의 불만이 터져 나온 상징적 사건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자신을 ‘치킨 마니아’라고 밝힌 30대 주부 김 씨는 “고물가 상황에서 저렴한 치킨을 원하는 소비자는 대형마트 치킨을 선호할 것이고, 나처럼 다양한 맛을 원하는 소비자는 비싼 가격을 지불하더라도 프랜차이즈 치킨을 사 먹는 것 아니겠냐”며 “마트에서 파는 초밥과 횟집에서 파는 고급 초밥 가격이 다르고, 소비자들이 각자 취향에 맞게 선택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40대 직장인 박 씨는 “요즘 치킨 한 마리 사 먹으려면 3만원은 족히 든다. 가격이 부담스러웠는데 대형마트에서 치킨을 싸게 팔아주는 덕분에 부담 없이 맥주와 함께 치킨을 즐길 수 있다”고 했다. 30대 주부 김 씨는 “마트 치킨 때문에 치킨 프랜차이즈가 피해를 본다면 프랜차이즈 치킨이 경쟁력이 없다는 얘기 아니냐”고 프랜차이즈 치킨 가게들을 비판하기도 했다.

소비자들이 ‘저가 치킨’으로 몰리는 이유 

이번 2차 치킨 전쟁은 12년 전과는 양상이 180도 다르다. 대형마트 치킨이 소비자들로부터 지지받고 있는 반면, 프랜차이즈 치킨 업체들은 비난의 화살을 맞고 있다. 최근 치킨 관련 기사의 댓글창은 대형마트를 지지하고 프랜차이즈 업계를 비판하는 글로 도배가 된다. “대기업 반값 치킨을 막아줬더니 3만원 치킨으로 뒷통수를 맞았다.”는 반발 여론이 들끓으면서 ‘2022 치킨 전쟁’은 새 국면을 맞고 있다.

지난 3월, 윤홍근 제너시스 BBQ 회장이 YTN 라디오 ‘슬기로운 라디오 생활’에 출연해 “소비자들이 1닭 2만원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라는 진행자의 질문에 “한마디로 말해 지금 2만원이 아닌 약 3만원 정도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대답해 소비자들의 반발을 자초했음에도 프랜차이즈 치킨 업체들은 꾸준히 가격을 인상해 치킨 한 마리당 가격이 2만원을 넘어선 데다 코로나 이후 배달비까지 대폭 인상되면서 ‘3만원 치킨 시대’가 현실화된 것이 프랜차이즈에서 대형마트로 소비자층이 옮겨가는 가장 큰 이유다.

이 같은 판도 변화에는 프랜차이즈 치킨 업계의 가격 구조에 대한 소비자들의 의구심이 자리 잡고 있다. 대형마트와 프랜차이즈 업계가 공급받는 생닭의 품질이 차이가 없는데도 치킨 가격이 2배 이상 나는 점이 문제라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대형 프랜차이즈 치킨업체 영업이익률을 살펴보면 비에이치씨(bhc) 27.2%, 혜인식품(네네치킨) 15.2% 등 높은 수준을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더 높은 가격으로 치킨을 내놓고 있어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프랜차이즈 치킨 불매 운동을 벌여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대형마트의 한 상품기획자는 “국산 육계 업체들의 시스템이나 사육 방식, 사료 등은 비슷하기 때문에 닭고기의 질은 거의 비슷하다”며 “소비자 입장에선 치킨 선택에서 가격이 중요한 요소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