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데이터] 오히려 비정규직 늘린 ‘비정규직 제로’ 정책, 비정규직 차별도 여전해

문 정부의 ‘비정규직 제로’ 정책, 사회적 혼란만 초래해 오히려 기간제 근로자 늘어나고 정규직 신규 채용은 반토막 났다 청년 일자리 파괴 현상 심각, 모두를 위한 현실적인 정책 제안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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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지난 2017년 5월 12일 인천공항공사에서 열린 ‘찾아가는 대통령,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열겠습니다’ 행사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사진=청와대

문재인 정부 시절 시행된 무리한 ‘비정규직 제로’ 정책의 여파로 한 청소근로자가 유명을 달리했다. A씨는 공공기관 비정규직 정규직화 가이드라인에 따라 작년 7월 설립된 금감원 자회사 ‘FSS 시설관리’ 소속 근로자였다. 그는 금감원 직원들이 출근하기 전에 청소를 서두르던 중 의식을 잃고 쓰러진 뒤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회복하지 못했다.

이는 용역 고용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된 뒤 업무량이 늘어나면서 발생한 과로사로 추정된다. 정규직화를 하면서 비용에 부담을 느낀 회사가 감원하는 바람에 해당 근무자의 근무 강도가 훨씬 강해진 것으로 전해졌다. ‘비정규직 제로’라는 비현실적이고 바람직하지도 않은 절대 목표를 세우고 밀어붙인 결과가 이것이다. 결국 정규직이라는 명함만 주고 과도한 근무와 생명의 위협, 그 어느 것에서도 이 근무자를 지켜주지 못했다.

비정규직 제로는 문재인 정부의 ‘1호 정책’이었다. 문 전 대통령은 취임식 이틀 뒤 헬기로 인천공항공사로 날아가 첫 외부일정을 가지면서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선언했다. 당시 행사장에서 한 비정규 근로자는 ‘이제 희망이 보인다’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하지만 보여주기식의 무리한 정규직 전환을 두고 포퓰리즘 정책이라는 논란이 일었으며, 자칫 ‘비정규직은 악(惡)’이라는 이분법적인 인식을 퍼트릴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제기됐다. 일각에선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자발적 플랫폼 노동자가 급증하는 판국에 시대착오적인 정책이라며 거세게 비판했다.

‘비정규직’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키워드 ‘비정규직’ 긍부정 비중, 관련 부정키워드/출처=㈜파비 데이터 사이언스 연구소

파비 데이터 사이언스 연구소에서 ‘비정규직’에 대한 인터넷상 언급량을 토대로 긍부정 평가를 조사해본 결과, 부정 평가가 57.14%로 긍정 평가 42.86%를 제쳤다. 절반이 넘는 국민들이 비정규직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심지어 비정규직 관련 언급된 부정키워드를 보면 ‘후회’ ‘차별’ ‘아웃’ ‘불안’ ‘부담’ ‘부작용’ 등의 키워드가 등장하며 이로 인해 비정규직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어떻게 형성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키워드 ‘비정규직’ 채널 카테고리별 긍부정 비중/출처=㈜파비 데이터 사이언스 연구소

또한 이러한 언급량은 오로지 국민에게 있어 접근성이 좋고 장벽이 낮아 의견을 비교적 쉽게 표출할 수 있는 매체인 커뮤니티에서 기인한 것이다. 커뮤니티 내에서의 7월 10일~7월 23일 2주간 부정 언급량은 42,080건으로 긍정 언급량 39,852건과 2,228건의 차이가 났다.

비정규직 제로? 공기업 신규채용·연구인력 채용 제로

정규직화 상징사업장인 인천공항공사에서는 이 정책의 반동으로 지금껏 온갖 부작용 시달려 왔다. 비정규직 전환과정의 불공정으로 기존 직원과 청년들이 반발했던 ‘인국공 사태’는 큰 사회적 혼란을 야기했다. 이 과정에서 정부가 경영자에게 책임을 뒤집어씌워 해고했지만 법원이 부당해고로 판결해 2명의 사장이 공존하게 된 다소 기이한 일도 벌어졌다. 또 비정규직 제로라는 목표달성을 위해 비정규직을 해고하는 기만적 방식도 동원됐다.

정부의 무리수 정책은 고용시장 전반의 청년 일자리 파괴로도 이어졌다. 정부 눈치를 살피며 정규직화를 우선하다 보니 채용 여력이 소진돼 공기업에선 신규 채용이  ‘반토막’났다. 주요 공기업 35곳의 정규직 신규 채용 규모가 2019년 1만1,238명에서 지난해 5,917명으로 47% 줄어든 것이다. 공기업은 직원 수와 총액 인건비가 한정돼 있어 정규직 전환으로 직원이 늘어나면 신규 채용 감소는 불가피하다.

4,616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한 코레일은 최근 2년 새 64%, 5,662명을 전환한 한전은 41% 신규 채용이 감소했다. ‘비정규직 제로’의 상징사업장 인천국제공항공사에서도 정규직 채용이 반토막 났고 한국마사회는 아예 신규 채용 제로다. 수많은 공공기관 취업준비생들이 기회를 박탈당한 것이다.

유능한 인재들의 채용을 가로막는 구축 효과도 만만찮다. 주요 연구기관에선 경력이 미진한 비정규직 연구원들이 대거 정규직이 되면서 실제 필요한 고급 연구인력 채용이 급감했다.

비정규직 제로 정책 펼쳤는데 기간제 근로자는 늘어났다?

게다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와 민간기업의 비정규직 근로자 정규직 전환 확산을 유도해온 문재인 정부 임기 동안 기간제 근로자(계약직) 수가 오히려 160만 명 넘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사업주들이 정규직 전환을 회피하기 위해 근로자 사용 기간에 대한 ‘쪼개기 계약’ 등의 편법행위가 근절되지 않고 있는 것이 기간제 근로자 확대로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3일 통계청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말기인 지난해 기간제 근로자(임금근로자 기준) 수는 453만7,000명으로 전년보다 60만4,000명 늘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첫해인 2017년과 비교해 160만7,000명 증가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기간제 근로자 수는 2017년 293만 명, 2018년 300만5,000명, 2019년 379만9,000명, 2020년 393만3,000명, 2021년 453만7,000명으로 매년 증가했다. 전체 임금노동자(정규직+비정규직) 대비 기간제 근로자 비중도 2017년 14.6%에서도 2021년 21.6%로 4년 새 7%포인트(P) 상승했다. 근속기간 1년 6개월 이상 기간제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율은 2017년 13.5%, 2018년 16.2%, 2019년 13.3%, 2020년 13.7%, 2021년 12월 14.6%로 매년 10%대에 머물고 있다.

비정규직 직장인 67.4%, 부당한 차별 받는다 느껴

아울러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도 여전히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벼룩시장이 비정규직 직장인 72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67.2%가 ‘정규직 대비 부당한 차별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비정규직 직장인들이 차별받고 있다고 느끼는 가장 큰 이유는 ‘급여’였다. 응답자의 40.5%가 ‘정규직과 동일 업무 대비 낮은 급여’를 차별 요소 1순위로 꼽았다. 실제로 비정규직 직장인의 월 평균 급여는 201만원으로, 정규직 월평균 급여 287만원보다 86만원 적었다. 급여 외에 ▲높은 고용불안(19.0%) ▲낮은 복지 수준(18.2%) ▲각종 상여금 제외(17.4%) 순으로 차별을 받고 있다고 답했다.

키워드 ‘기간제 근로자’ 관련 키워드 네트워크/출처=㈜파비 데이터 사이언스 연구소

실제로 ‘기간제 근로자’ 관련 키워드를 네트워크 그림으로 정리해본 결과, 가장 밀접한 관계를 나타내는 키워드로 ‘월급’ ‘기간’이 등장했다. 이는 기간제 근로자인 비정규직 직장인이 월급에 대한 차별, 기간에 대한 불안으로 힘들어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자료다. 또한 ‘차이’ ‘비교’ ‘계급’이라는 단어도 찾아볼 수 있다. 심지어 ‘라면’이라는 키워드도 등장한다. 색이 다르고 거리는 어느 정도 떨어져 있기는 하나, 그림 자체가 모여져 있는 형태를 띠고 있기 때문에 모두 강한 관련성을 가진 키워드라고 할 수 있다.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근로 환경 격차는 코로나19 발생 이후 더욱 커졌다. 코로나19 이후 비정규직 근로자가 실직 또는 소득 감소, 무급 휴가를 경험한 비율이 정규직보다 높게 나타났다. 조사에 따르면 비정규직 직장인의 55.5%는 코로나19 이후 비자발적 실직을 경험했다. 이는 정규직 직장인(23.9%)의 2배에 달하는 수치다. 소득 변화를 묻는 질문에도 비정규직 직장인은 절반이 넘는 59.7%가 ‘소득이 줄었다’고 답한 반면, 정규직은 31.5% 정도만 ‘소득이 줄었다’고 답했으며 이는 비정규직의 1/2 수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