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리막 사업 철수 결정한 SKIET·도레이, 전기차 캐즘에 산업계 ‘사업 재편’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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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리막 사업 매각 작업 돌입한 도레이, SKIET도 매각 나선다
전기차 캐즘에 영업손실 커지는 업계, 배터리 회사 실적도 '악화 일로'
분리막 문제로 대규모 리콜 등 홍역 겪은 LG, 분리막 사업 이어갈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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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화학 기업 도레이그룹이 2차전지 분리막 사업 매각을 추진한다.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이 지속된 탓에 향후 사업 전망이 불투명해진 글로벌 분리막 시장에서 완전히 발을 빼겠단 취지다. 현재 도레이는 2022년 LG화학과 설립한 헝가리 합작법인(JV) 지분을 LG 측에 넘기는 방안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글로벌 점유율 4위를 기록하던 SKIET에 이어 도레이까지 매각을 시사하고 나서자 시장에선 글로벌 전기차 밸류체인에서 구조조정이 본격화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일본 도레이그룹, 분리막 사업 매각 본격화

7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최근 일본 도레이그룹은 분리막 사업 매각 작업에 돌입했다. 이번 매각 대상엔 도레이가 한국에 갖고 있는 구미 분리막 공장과 2022년 LG화학과 JV로 설립한 헝가리 분리막 공장도 포함됐다. 시장에선 매각 측에 기대하는 총가치를 1조원 안팎으로 보고 있다. 이와 관련해 업계 관계자는 “LG화학은 이르면 연말까지 도레이로부터 헝가리 합작법인 지분 20%를 추가로 확보하며 경영권을 가져온다는 계획”이라며 “추후 나머지 30%도 LG화학이 인수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사실상 LG가 사업권을 회수하게 되는 셈이다.

도레이가 분리막 사업 매각을 타진하고 나선 건 향후 사업 전망이 불투명해졌기 때문이다. 실제 최근 전기차 캐즘이 이어지면서 분리막 등 배터리 소재사들의 어려움이 커지고 있다. SK 계열 분리막 회사 SKIET는 1분기 연결기준으로 매출 461억원에 영업손실 674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은 작년 1분기 대비 1,000억원 가까이 감소했고 영업이익은 적자전환한 것이다. 더블유씨피는 1분기 영업이익이 1년 새 160억원에서 6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이에 대해 더블유씨피 관계자는 “2023년부터 글로벌 전기차 시장이 캐즘 구간에 진입해 수요 둔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분리막을 공급받는 배터리 회사 실적도 악화 일로를 걷고 있다. 글로벌 고금리 기조가 장기화한 데다 실물경기까지 부진에 빠지면서 전기차 수요가 급감한 탓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에서 받는 첨단제조생산세액공제(AMPC) 1,889억원을 제외하면 1분기에 사실상 316억원 규모 영업손실을 냈다. SK온은 1분기 영업손실 3,315억원을 기록했고, 같은 기간 삼성SDI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28.8% 감소했다.

여기에 꿈의 배터리로 불리는 전고체 배터리가 이르면 2027년(삼성SDI 계획 기준) 상용화될 것으로 전망되면서 분리막 소재사의 악재가 더해졌다. 분리막은 리튬이온 배터리에서 양극재와 음극재가 직접 닿아 화재가 발생하는 걸 차단하기 위한 안전핀 역할을 하는 부품이다. 그런데 전고체 배터리는 리튬이온을 이동할 수 있게 돕는 전해질을 액체 대신 고체로 대체해 분리막이 필요 없다. 전고체 배터리가 상용화해도 다소 높은 가격대를 형성할 것으로 보이는 만큼 리튬이온 배터리의 입지가 완전히 사라지진 않겠지만, 관련 업체의 잠재 성장률 하락은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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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직계열화 이룬 LG, 분리막 끌고 나갈 듯

다만 LG는 분리막 사업을 계속 끌고 나갈 것으로 보인다. 앞서 분리막 문제로 인해 대규모 배터리 리콜 사태 등 홍역을 앓은 바 있기 때문이다. LG화학은 지난 2015년 충북 청주시 오창공장 내 분리막 관련 제조 설비를 도레이에 매각하면서 분리막 사업에서 한 차례 손을 뗐다. 직접 생산하는 것보다 구매해서 쓰는 게 경제적이란 판단에서였지만, 2020년 돌연 문제가 발생했다. 현대차의 코나EV와 제너럴모터스(GM)의 볼트EV에 탑재된 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에 화재가 발생한 것이다. 원인은 ‘분리막 밀림’이었다.

이에 현대차와 GM은 대규모 배터리 리콜을 진행했고, LG전자와 LG에너지솔루션은 이 과정에서 리콜 비용으로 2조원 이상을 쏟아부었다. LG화학이 2021년 3분기 실적 발표 컨퍼런스콜에서 “다시는 배터리 대량 리콜이 없을 것”이라고 단언하며 분리막개발센터를 설립을 본격화한 계기다. 이후 LG화학은 그해 7월 분리막 사업 전문화와 공급 안정화를 위해 LG전자의 분리막 코팅 사업을 인수했고, 도레이와 손을 잡고 JV도 설립했다.

결국 자사 제품 제작 과정에 분리막이 필요한 이상 LG가 관련 사업을 놓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게 시장의 대체적인 시선이다. 자사 제품의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선 기술력 확보가 필수적인 데다, 배터리 수직계열화를 통해 사업 시너지를 확보하고 있는 LG 입장에서 갑작스럽게 사업 구조를 깨뜨릴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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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IET는 매각 추진, SK온 자금 수혈 목적

분리막 시장에서 점유율 4위를 기록하고 있는 SKIET는 경영권 매각을 포함한 배터리 사업부 재편 작업을 추진하겠다는 구상이다. SKIET는 분리막 사업에 ‘올인’한 기업 중 하나다. 당초 SKIET를 이끌던 주요 원동력은 FCW(플렉시블 커버 윈도)였다. FCW는 휘어지는 디스플레이 표면에 부착하는 보호필름으로, 폴더블폰 등에 활용된다.

SKIET는 FCW 기술로 세계 최대 IT·가전쇼 ‘CES 2024’에서 혁신상을 받을 만큼 기술력을 인정을 인정받았지만, 막상 판매처는 마땅치 않았다. 회사 관계자는 “중국을 중심으로 플렉시블 디스플레이의 수요가 커질 것으로 기대했지만, 그렇지 않았다”며 “폴더블폰 외엔 FCW를 공급할 곳이 없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SKIET는 FCW 부문에서 분기당 평균 50억원가량을 적자를 봐야만 했다.

이에 SKIET는 분리막 사업에 집중해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정조준하겠단 계획을 세웠다. 배터리 부품 현지화 비중이 2029년까지 100%로 점차 상승하고 있는 만큼 북미에 분리막 공장을 세워 미래 경쟁력을 확보하겠단 취지였지만, 전기차 성장 부진으로 배터리 제조사 SK온이 재무적 어려움에 처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SK그룹이 SK온 지원을 위해 SKIET 등 자회사 지분 매각을 결정한 것이다.

문제는 SK그룹이 SKIET 매각을 본격화한다고 해도 원하는 만큼의 가격을 제시할 원매자를 찾을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는 점이다. 2022년 기준 SKIET 매출액 중 SK그룹 국내외 계열사와의 거래 비중은 약 73%에 달한다. SK그룹이 매출을 보장하지 않으면 SKIET를 인수할 동기가 사실상 없다는 게 시장의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