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BM 큰손 엔비디아 잡아라” 삼성전자, 반도체 에이스 400명 투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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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반도체 에이스로 TF·개발팀 꾸려
SK하이닉스-삼성전자, 차세대 HBM 기술 개발에 총력
HBM 가격 낮추려 경쟁 유발? '엔비디아의 큰 그림' 분석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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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가 차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를 엔비디아에 납품하기 위해 반도체 에이스 임직원 400여 명을 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가 특정 고객사를 뚫기 위해 이렇게 많은 인력을 투입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HBM 큰손인 엔비디아를 잡아야 시장 주도권을 거머쥘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회사의 역량을 총동원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삼성전자, HBM 전담 개발팀 400명 규모로 조직

6일 산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현존 최고 성능 HBM인 ‘HBM3E 12단’ 제품을 오는 3분기 엔비디아에 납품하기 위해 최근 100명 규모의 태스크포스(TF)를 조직했다. “HBM의 품질·수율을 올려 납품을 서둘러달라”는 엔비디아의 요청에 따라 해당 TF는 수율 향상에 집중적으로 매달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나머지 300여 명은 HBM4 개발팀에 배속됐다. 이들은 이르면 연말께 HBM4 개발을 완료해 내년 엔비디아 문을 두드린다는 계획이다.

삼성전자 사안에 밝은 한 관계자는 “지난 3월 초 이정배 메모리사업부장이 HBM 개발조직 신설 검토를 지시한 뒤, 빠르게 조직 개편이 이뤄지고 있다”며 “3월 중순부터 AVP팀 등 인력들이 HBM 개발팀으로 이동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개발조직 규모는 팀으로 정해졌는데, 팀은 통상적으로 400여 명 규모 조직으로 구성된다”고 부연했다.

삼성전자의 HBM 개발팀 신설은 HBM3E 시장부터 헤게모니를 되찾겠다는 구상으로 읽힌다. 3세대 제품인 HBM2E의 경우 D램 3사 중 삼성전자의 점유율이 가장 높았으나, HBM3부터는 SK하이닉스가 독주하고 있는 양상이다. HBM개발팀은 HBM3E 수율 안정화, HBM4 개발 등 업무를 담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HBM4는 핀펫(FinFET) 공정을 로직다이 등에 적용하고, HBM3E 대비 입출력(I/O)이 2배 늘어나는 등 HBM3E와 비교해 개발 난도가 높다.

HBM개발팀의 첫 과제는 HBM3E 수율 안정화와 엔비디아 퀄테스트 통과 등일 것으로 추정된다.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 등 경쟁사가 엔비디아에 HBM3E 제품을 상반기 내 공급하는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삼성전자 HBM3E의 경우 아직 퀄테스트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 게임체인저 HBM, 차세대 제품 놓고 경쟁 치열

최근 HBM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SK하이닉스와 이를 바짝 추격 중인 삼성전자의 기술 경쟁이 치열하다. 5일 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최근 경기도 이천 본사에서 열린 ‘AI 시대, SK하이닉스 비전과 전략’ 기자간담회에서 이달 중으로 5세대 제품인 HBM3E 12단 샘플을 제공하고 올해 3분기 양산할 것이라는 계획을 밝혔다. SK하이닉스는 HBM3E 8단 제품도 지난 3월 세계 최초로 양산해 엔비디아에 가장 먼저 공급하고 있다. 엔비디아가 전 세계 인공지능(AI) 시장의 80%를 장악하는 만큼 AI 분야에서 SK하이닉스 영향력 또한 커지고 있다.

이에 더해 SK하이닉스는 현재 6세대·7세대 제품인 ‘HBM4’와 ‘HBM4E’를 준비 중이다. 차세대 제품들을 선제적으로 개발해 HBM 1위를 공고히 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SK하이닉스는 HBM의 성능을 높이기 위해 HBM 핵심 패키지 기술 ‘MR-MUF’를 활용한다. 이 기술은 과거 공정 대비 칩 적층 압력을 6% 수준까지 낮추고 공정시간을 줄여 생산성을 4배로 높였다. SK하이닉스가 도입한 어드밴스드 MR-MUF는 신규 보호재를 적용해 기존보다 방열 특성을 10% 더 개선했다. 이를 16단 등 고단 적층 HBM 생산에 적극 도입할 방침이다. 이와 함께 최근 낸드플래시 생산에 쓰일 것으로 알려진 ‘M15X’ 팹(공장)의 용도를 D램으로 결정했다. HBM 생산능력을 확대하기 위해서다.

현재 HBM 2위인 삼성전자도 추격에 속도를 올리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달부터 HBM3E 8단 제품의 양산에 들어갔다. 또 HBM3E 12단 제품도 2분기 내 양산 예정이다. 이르면 하반기에 엔비디아에 HBM3E 12단을 공급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최근 차세대 HBM에서 기술력 격차를 내기 위해 메모리와 파운드리, 어드밴스드패키징 등 사업부 역량과 리소스를 모두 모으겠다는 전략을 밝혔다. 전사적 차원에서 HBM 시장에 대응하겠다는 뜻이다.

삼성전자는 또 ‘설계-제조-패키징’을 한 번에 하는 ‘턴키(일괄시행)’ 전략으로 점유율을 늘려나갈 전략이다. 메모리와 시스템반도체, 패키징 등 전 공정을 모두 수행할 수 있는 장점을 살린 것이다. 아울러 올해 HBM의 출하량도 전년 대비 2.9배로 늘릴 계획이다. 연초까지만 해도 목표치는 2.5배였지만 빠른 시장 선점을 위해 이를 상향 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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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 SK그룹 회장이 4월 24일(현지시간) 미국 실리콘밸리를 찾아 미국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와 만나 대화하고 있다/사진=최태원 회장 인스타그램

SK하이닉스·삼성전자 경쟁 부추기는 엔비디아

이처럼 HBM 경쟁이 격화하는 가운데, 그 열쇠를 쥔 AI 칩 선두 주자인 엔비디아의 행보에도 업계의 관심이 쏠린다. 특히 일각에선 엔비디아가 HBM 시장에서 경쟁하고 있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간 경쟁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HBM 시장에서 엔비디아를 둘러싸고 나오는 각종 정보가 불명확해 의도적인 경쟁 유발에 대한 의구심을 키우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업계에선 엔비디아가 현 공급사, 잠재적인 공급사 간의 관계를 곧바로 정립하지 않고 군불을 때는 듯한 정보만 흘려 경쟁을 유도, HBM 가격을 내리려 하고 있다는 분석이 적지 않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달 25일 짧게라도 시간을 내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를 급히 만난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풀이된다.

엔비디아는 삼성전자가 업계 최초로 개발한 HBM3E 12단 제품을 “‘테스트하고 있다”며 공급 가능성을 열어둔 지 한 달 이상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공급에 대한 명확한 발표를 내놓지 않고 있다. 업계에선 이를 삼성전자를 움직이게 하려는 전략으로 해석한다. 삼성전자가 2분기부터 HBM3E 12단 제품을 양산하겠다고 발표하며 먼저 전면에 나선 것도 이런 엔비디아의 미적지근한 행보를 빼고는 설명이 어렵다. 엔비디아가 자사로 공급되는 HBM의 가격을 낮추기 위해 두 기업의 경쟁을 의도적으로 유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업계 일각에서는 가격 경쟁의 부대효과로 기술 경쟁도 쉬지 않고 계속 발생해 장기적으론 긍정적으로 보는 평가들도 나온다. 기본적으로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모두 기술력을 높이면서 HBM의 가성비에 궁극적인 목적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엔비디아를 통해 가격 경쟁력을 갖추면 전체 시장에서의 경쟁력도 상승하는 효과를 기대해 볼 수 있는 만큼, 자칫 불편할 수 있는 상황을 기회로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