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투자 금액 ‘반토막’, ‘얼음’된 VC 생태계 아래 ‘위기’ 현실화

美 벤처시장 위기 가시화, 스타트업은 ‘줄폐업’ 국내 벤처투자액 전년 대비 77% 감소 모태펀드 출자 등 대책 내놓은 정부, 현장선 “체감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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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상반기 미국 내 벤처투자 금액이 반토막 났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글로벌 금융시장이 흔들리는 가운데 VC들이 수익을 담보할 수 없는 스타트업에 대한 자금 지원을 회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이에 우리 정부는 모태펀드 출자를 통해 벤처·스타트업 자금 유입을 유도하고 있으나, 현장에선 실질적인 의미가 없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美 벤처투자 전년 동기 대비 49% 줄어

13일(현지 시각)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피치북에 따르면 올해 2분기 미국 내 벤처투자 금액은 398억 달러(한화 약 53조원)로 전년 동기 대비 49% 줄었다. 같은 기간 미국 내 창업 초기 스타트업에 대한 벤처투자 금액 역시 반토막 난 100억 달러에 그쳤다. 이에 자금이 바닥난 스타트업들은 폐업 수순을 밟는 모양새다. 특히 스타트업 펀딩 생태계가 마지막으로 호황이었던 2021년 하반기에 투자를 받았던 스타트업들이 올 하반기부터 줄줄이 자금 고갈을 겪을 것으로 전망된다.

가장 먼저 쓰러진 건 스타트업 생태계 위축 직후 펀딩을 진행하던 스타트업들이다. 결제 서비스 스타트업인 팬서는 지난해 초 2,000만 달러(한화 약 270억원)의 투자금을 모집하기로 약속됐지만, 상황이 급변하자 투자자들이 대거 이탈하면서 올해 6월 결국 폐업했다. 지난 5월 또 다른 결제 스타트업인 플라스티크도 기업인수목적회사(SPAC·스팩)와의 인수합병(M&A)이 물거품이 되면서 파산 신청을 했다.

VC 생태계는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인 2020년 수준으로 돌아갔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풍부한 유동성과 낮은 대출금리로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가 활발했지만, 최근 들어 상황이 달라졌다. 미국 VC 루트벤처스의 제너럴파트너 리 에드워즈는 “최근 VC 심사역들은 스타트업의 펀더멘털에 주목하고 있다”며 “시리즈 A 투자를 받으려면 그만한 매출 실적이 필요하다”고 말했는데, 실제 소프트웨어(SW) 개발 스타트업 툴체인의 벤지 와인버거 CEO는 60명이 넘는 투자자로부터 투자를 거절 당했다. 신규 투자 유치를 할 수 있을 만큼의 빠른 매출 성장세를 보이지 못했다는 이유에서였다. 결국 툴체인은 투자 유치를 하지 못한 채 올여름 폐업했다.

VC 생태계 빙하기에 토스 등 기업도 ‘위기’

VC 생태계 빙하기는 전 세계적인 흐름으로 자리 잡았다. 크런치베이스 데이터에 따르면 1분기 전 세계 스타트업의 투자 유치 규모는 총 760억 달러(한화 약 100조원)으로, 1년 전 (1,620억달러, 한화 약 213조3,540억원)보다 53% 급감했다. 특히 1분기엔 모든 단계의 스타트업 투자가 감소했다. 1분기 글로벌 시드단계와 초기 단계 스타트업 투자 유치 규모는 각각 69억 달러(한화 약 9조873억원), 256억 달러(한화 33조7,100억원)로 집계됐다. 전년 동기 대비 각각 44%, 54% 감소한 것이다.

특히 최근엔 스타트업이 지난 투자 유치에서 약속한 속도의 성장이 이뤄지더라도 자금 조달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부진이 더욱 심해졌다. 보수적인 투자를 이어가는 분위기가 지속된 탓이다. 이 같은 문제가 가시화된 기업이 ‘토스’다. 당초 토스는 그간 수익성을 백안시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매출액, 월간활성화이용자 수 등의 지표를 통해 성장세를 보여주는 것만으로 자금 여력이 풍부한 투자자들을 끌어모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토스의 밸류에이션 버블은 작년 말부터 급격히 꺼졌다. 컬리, 원스토어, SK쉴더스 등 적자에도 불구 높은 기업가치를 매긴 기업들이 연초부터 잇따라 IPO에 실패하면서 토스 또한 위기를 면치 못하게 됐다.

쿠팡 등 기업이 흑자 전환에 나서고 있을 때, 토스는 여전히 적자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올해 1분기 연결재무제표 기준 토스의 매출액은 3,403억원, 영업손실은 598억원이었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액이 40% 이상 늘었지만 영업 적자 규모도 늘었다. 토스의 지난해 영업손실은 1,796억원으로, 전년 대비 1,000억원 이상 늘었다. 매출액이 늘어도 영업이익이 제대로 나오지 않으니 투자금 유인이 약해지고 결과적으로 고밸류를 정당화할 수 없게 돼 불리한 상황이 이어졌다.

국내 벤처 투자도 하락

이런 가운데 국내 벤처투자는 해외보다 더 큰 폭으로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에 따르면 1분기 스타트업 투자 금액은 8,958억원으로 전년 3조9,038억원 대비 77% 감소했다. 이와 관련해 한 VC 대표는 “올해는 높아진 경제환경의 불확실성으로 엑시트도 쉽지 않아 신중한 투자가 이어질 것”이라며 “투자금에 기대 경영하는 시대는 지나갔다. 이젠 수익성 중심으로 생존해야 할 때”라고 경고했다.

투자 한파 극복으로 위해 정부는 모태 펀드 출자 사업을 시행 중이다. 중소벤처기업부가 모태펀드 출자를 통해 민간에서 자금을 모아 벤처‧스타트업에 투자해 ‘성장 자금’으로 유입되도록 앞장서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기업들은 정부의 지원책들에 대해 “현장에서 체감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경기연구원의 지난해 ‘경기도 혁신성장 역량 진단 및 정책 추진 방향’ 보고서에 따르면 경기도는 혁신성장 역량이 전국 지자체에서 상위권에 속했지만 질적 수준을 낮다고 평가된 바 있다. 비슷한 수준의 역량을 보유한 서울과 비교하면 투자 유치 및 창업투자 회사 확보 수준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에 전문가들 사이에선 투자에 대한 정책과 문화를 바꿔 다양한 규모의 기업간 융햡이 일어나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기업을 보호하면서 타 기업과 상생하는 균형 잡힌 방향으로 나아가야 국내에서도 한 획을 그을 만한 기업이 나올 수 있을 것이란 의견이다. 경기도 측은 투자의 질적 향상을 위해 ‘경기 M&A센터’의 기능 확대를 통한 벤처 스타트업과 대기업·중견기업 간의 투자 매칭 등 사업을 추진 중이나, 해당 사업이 현장 실적에 얼마나 반영될지 여부는 아직 미지수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