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은 반도체 인재 ‘쟁탈전’ 중인데, 한국은?

세계 각국, 반도체 인력 턱 없이 부족해, 예고된 인력 전쟁 공장 짓고 있는데 기술인력은 부족. ‘파격 인센티브’까지 제공 반도체 전공에 등 돌린 고3, 등록 포기율 높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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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경호(앞줄 오른쪽)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4월 7일 경기도 평택의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방문해 경계현(앞줄 왼쪽) 삼성전자 대표와 반도체 원재료인 웨이퍼(wafer)를 살펴보고 있다//사진=기획재정부

전 세계적으로 반도체 패권 경쟁이 격화하는 가운데, 한국·일본·대만 기업들의 기술 인력 확보 전쟁도 점차 치열해지고 있다. 대학에 반도체 전문 학과를 신설하고 장학금을 주는가 하면, 스톡옵션까지 나눠 주는 등 기존 인력 이탈을 막는 동시에 추가 인력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는 모습이다. 빠르게 늘어나는 반도체 공장에 비해 이를 운영할 기술자 양성은 더디기 때문이다.

미국반도체산업협회 발표에 따르면 오는 2030년까지 전 세계적으로 6만7,000명가량의 반도체 근로자가 부족할 전망이다. 이에 반도체 업계에 대규모 인력 부족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점차 팽배해지면서 인력 쟁탈전으로까지 비화하고 있다.

일본의 전략적 움직임

반도체 인재 확보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국가는 바로 일본이다. 최근 반도체 산업 부흥을 내건 일본은 국내외 기업에 보조금까지 지급하며 설비 투자 유치를 받고 있지만, 정작 이를 가동할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현재 일본의 반도체 업계는 이미 수년에 걸쳐 쇠퇴한 데다, 숙련된 인력을 양성할 수 있는 능력도 약화돼 마땅한 타개책이 없는 상황이다.

이에 일본 최대 인력 파견 회사 아웃소싱이 지난 2일 자회사 OS 나노테크놀로지를 설립하고 반도체 분야에 특화된 인재 양성에 나섰다. OS 나노테크놀로지는 다른 기업들과의 협력을 통해 첨단 반도체 공장에 필요한 기술 인력을 양성하고 각 기업 현장에 배치할 계획이다. 현재 일본 나가사키현에 위치한 교육 시설에서 반도체 제조 시설 운영을 가르치고 있으며, 대만 TSMC와 소니의 신규 공장 건설에 맞춰 구마모토현에 새로운 교육 센터 설립도 진행 중이다.

아울러 일본 기업들은 기존 반도체 근로자를 유지하기 위해 전례가 없던 카드까지 꺼냈다. 바로 자사주까지 지급하기 시작한 것이다. 일본 기업 문화에 비춰보면 매우 이례적인 결정으로, 업계의 절박함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실제로 지난달 소니는 향후 몇 년 동안 반도체 및 엔터테인먼트 부문의 직원 3,000여 명에게 1인당 평균 2,000만 엔(약 1억8,000만원) 상당의 주식을 지급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이를 통해 고위 임원진뿐 아니라 일반 개발직 직원까지 회사 주식을 받게 된다.

일본 자동차 반도체 기업 르네사스도 최근 직원 2만 명에게 주식을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아사히신문은 자국 기업의 이례적인 움직임을 두고 “반도체 업계에서 전 세계적으로 첨단 공장 건설 움직임이 활발해지면서 인력 확보가 기업들의 최대 과제가 됐다”고 설명했다.

기술 인재 수급에 급급한 미국

미국 역시 반도체 기술 인재의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세계 최대 파운드리 업체인 대만 TSMC는 최근 미국 내 전문 인력 확보 문제로 애리조나 공장 개장을 1년 연기했다. TSMC는 인력을 수급하기 위해 애리조나 주립대학교와 협력해 반도체 전공자를 위한 교육 커리큘럼을 만들고 이 분야의 미래 전문가를 양성하고 있다.

미국의 경영 컨설팅 회사인 맥킨지앤컴퍼니는 2030년까지 미국에서 30만 명의 반도체 엔지니어와 9만 명의 숙련된 기술자가 부족할 것으로 전망했다. 샤리 리스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 비영리재단 전무도 “시설에 투자하고도 그곳에서 일할 인력을 확보하지 못할까 봐 가장 두렵다”며 “반도체 산업에 대한 흥분과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방법을 찾지 못한다면 충격이 클 수 있다”고 말했다.

반도체 특수과 외면하는 한국 고3들

한국 기업들도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2029년까지 매년 450명의 반도체 전문가를 배출하는 것을 목표로 국내 7개 대학에 반도체 계약학과를 운영하고 있다. SK하이닉스도 국내 여러 대학과 협력해 유사한 계약학과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또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용인시와 용인 반도체 마이스터고 육성 및 발전을 위한 업무협약도 체결했다. 양사는 △커리큘럼 개발 △온라인 교육 과정 △직무 기술 지도 △학생 대상 교육 훈련 등에 협력할 계획이다. 정부도 융합 교육을 통한 저변 확대, 장기적인 인재 육성 지원책 마련 등 반도체 인재 육성을 위한 종합 전략을 내놨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경쟁이 치열한 상황인 만큼 균형 발전보다도 우선 인재 확보가 더 중요하다고 본다”며 “웬만한 반도체 시설이 이미 수도권에 있는 만큼 수도권 학과 증원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이어 “반도체 한 회사로만 봐도 연간 6,000~7,000명의 신입 인력이 필요하다”며 “정부가 반도체 산업 지원을 위해 인재 육성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반도체 전공에 대한 예비 대학생들의 관심은 현저히 낮은 것으로 파악됐다. 학원가에 따르면 2023학년도 정시모집에서 주요 대학 중 대기업 취업연계가 가능한 반도체학과 최초합격 등록 포기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세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는 10명 모집에 13명의 추가 합격자가 나왔다. 최초 합격한 10명이 다 포기한 데 이어 3명이 더 포기했다는 의미다. 한양대 반도체공학과는 16명 모집에 44명의 추가합격자가 나오는 등 추가합격자가 모집인원의 약 3배에 달했다. 서강대 시스템공학과도 10명 정원에 8명이 등록하지 않았다.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교수는 “반도체 학과를 꾸리기 위해선 실험장비 등 많은 것들이 갖춰져야 하는데, 2010년대 전후만 해도 대학에서 반도체 실무를 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었고 대학도 반도체 교육의 필요성을 많이 느끼지 못했다”면서 “비메모리 설계 인력 등 반도체 인력 씨앗이 그때 뿌려졌어야 하는데, 그 필요성을 느끼는 시점이 늦었고 결국 준비가 돼 있지 않았던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