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기업은 날아오르는데” 멈춰선 국내 리걸테크 시장, 변협과의 갈등 이어져

미국·일본 등 각국에서 주목받는 리걸테크 산업, 우리나라에서는 ‘찬밥’ 징계·고발 등 대한변호사협회의 견제 이어져, 시장 선두 주자 로톡 ‘휘청’ “행정 소송 불사하겠다” 선언한 후발 주자 로앤굿, 갈등의 실마리는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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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시장에서 주목받는 리걸테크(Legaltech) 사업이 한국에서는 좀처럼 날개를 펴지 못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트랙슨(Tracxn)에 따르면, 높은 기업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리걸테크 기업은 △북미 20개 △유럽 3개 △아시아 2개 등 최소 25개가 존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 중 한국 기업은 단 하나도 없었다.

국내 리걸테크 시장은 대한변호사협회(이하 변협)의 격렬한 반대로 인해 좀처럼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 로톡을 비롯한 국내 리걸테크 선두 주자 플랫폼이 변협의 제재에 부딪혀 줄줄이 무너져 내린 가운데, 로앤굿 등 후발 주자는 리걸테크 플랫폼의 적법성을 인정받기 위해 행정 소송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미국·일본 등 각국 리걸테크 플랫폼 ‘급성장’

트랙슨에 따르면 지난해 9월 기준 전 세계 리걸테크 업체는 7,000여 개 수준이며, 투자 규모는 113억 달러(약 14조원)에 달한다. 이 중 48억 달러(약 6조원)가 최근 2년 사이에 투자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에서는 리걸줌, 아보, 로켓로이어 등 다양한 법률 플랫폼이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이 가운데 2001년 설립된 리걸줌은 △변호사 검색 △법률 문서 작성 △법률 상담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다. 리걸줌은 2008년부터 8년간 노스캐롤라이나주 변호사협회와 갈등을 겪어왔으나, 리걸줌이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가 유효하게 작용하며 합법 서비스로 인정받았다. 이후 리걸줌은 사업을 공격적으로 확장하며 사세를 키웠다. 2021년 나스닥에 상장한 리걸줌의 현재 시가총액은 27억 달러(약 3조원)에 달한다.

기술 스타트업의 성장이 비교적 느린 일본에서도 리걸테크 플랫폼의 성장세가 눈에 띈다. 법률서비스 온라인 광고 플랫폼인 ‘벤고시닷컴’은 2조원 이상의 기업가치를 기록하며 유니콘 반열에 올랐다. 한때 변호사법 위반 논란에 휘말리기도 했으나, 2018년 일본변호사연합회가 ‘변호사 정보 제공 웹사이트에 관한 지침’을 만들면서 사건이 일단락됐다. 현재 벤고시닷컴은 일본 변호사의 47.3%(2만1,228명)이 이용하는 최대 리걸테크 플랫폼이다. 지난해 매출은 87억 엔(약 797억원), 영업이익은 11억 엔(약 100억원)에 달한다.

변협의 플랫폼 견제, 국내 선두 주자 로톡 ‘참패’

반면 한국 리걸테크 산업 시장은 대중에 이름을 알리지 못한 채 정체해 있다. 성장 정체의 근본적인 원인으로는 리걸테크 플랫폼에 대한 변협의 부정적인 인식이 지목된다. 변협은 법률 상담 제안 솔루션 로톡과 같은 리걸테크 플랫폼은 홍보비를 많이 지출한 변호사가 사건 수임에 유리한 형태며, 이로 인해 법률시장이 왜곡될 위험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를 막기 위해 대한변협은 2021년 5월 법률서비스 디지털 플랫폼을 이용한 변호사 홍보를 금지하는 규정을 통과시켰다. 협회 소속 변호사의 로톡, 네이버 엑스퍼트, 로앤굿 등 법률 서비스 플랫폼을 통한 광고를 금지하는 것이 골자다. 변협은 이후 리걸테크 플랫폼을 이용하는 변호사들을 징계할 수 있는 권한을 쥐게 됐다.

변협의 ‘채찍’을 최전선에서 받아낸 것은 업계 선두 주자인 로톡이었다. 대한변협은 로톡이 변호사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법률 브로커 행위’를 하고 있다고 주장, 검찰에 세 차례 고발장을 접수했다. 허위·과장 광고를 했다는 이유로 공정거래위원회에도 고발했다. 하지만 변협의 고발은 모두 무혐의로 마무리됐고, 로톡을 운영하는 로앤컴퍼니는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에 헌법소송을 제기함과 동시에 공정거래위원회에 대한변협을 고발했다.

헌재는 ‘법률 플랫폼은 원칙적으로 허용된다’는 취지의 결정을 내렸으나, 대한변협은 합헌을 인정받은 조항만으로도 충분하다며 로톡에 가입한 변호사에 대한 징계를 이어갔다. 변협은 로톡에 가입한 변호사 1,440명에게 탈퇴를 요청했으며, 로톡에서 탈퇴하지 않은 변호사 9명에 대해 견책 및 과태료 300만원의 징계 처분을 내렸다. 로톡 운영사 로앤컴퍼니는 변호사 회원 급감으로 인해 수익이 악화하면서 임직원을 절반가량 내보냈으며, 강남 사옥도 매물로 내놔야 했다.

지지부진한 법무부 판결, 변협과의 전쟁 선포한 업계

한편 지난 20일 법무부는 변협이 로톡에 가입한 변호사들에게 내린 징계 처분이 정당했는지에 대한 심의를 진행했다. 로톡 가입 변호사 123명이 변협의 징계 처분이 부당하다며 법무부에 이의신청을 제기한 지 7개월 만이다. 하지만 법무부는 심의를 통해 이렇다 할 결론을 내리지 못했으며, 차후 심의를 계속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현재 로앤굿은 변협이 플랫폼 서비스의 합법성을 인정할 것을 촉구, 행정소송도 불사하겠다고 맞서고 있다. 로앤굿과 변협 사이 갈등의 중심은 로앤굿의 ‘소송 금융 서비스’다. 소송 금융 서비스는 민사 재판 비용 부담 능력이 없는 원고에게 변호사 착수금 등을 자체 지원하고, 승소하면 지원금에 일정액의 수수료(빌려준 금액의 1.3배~2배)를 더해 받는 서비스로, 앞서 변협은 이를 금품을 약속받고 변호사를 연결하는 알선 행위라고 지적했다.

이에 로앤굿은 소송 금융 서비스는 일종의 사전 광고료 개념으로 중개와 무관하다고 반박하고 있다. ‘한국판 리걸줌’을 목표로 내걸며 존 서(Jonh Suh) 전 리걸줌 대표를 등기이사로 선임하기까지 했다. 과거 미국처럼 합법성 논쟁으로 인해 정체해 있는 국내 리걸테크 시장의 변혁을 꾀하겠다는 포부가 읽히는 대목이다. 과연 로앤굿과 변협 사이 갈등의 끝은 국내 리걸테크 사업의 발전일까, 침체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