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열되는 美 벤처대출 시장 경쟁, SVB 인력 영입에 총력전

JP모건, HBSC 등 세계적 은행들, 벤처대출 시장에 뛰어들어 SVB 직원들에 눈독 들이는 은행들, 대규모 스카우트 단행 벤처대출 시장, SVB 파산 후 벤처대출에 대한 인식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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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이후 많은 은행이 벤처대출 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투자-성장-재투자’ 공식의 벤처대출 모델이 안정적인 투자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특히 HBSC, JP모건체이스 등 세계적인 은행들이 SVB의 직원들을 대거 영입하며 벤처대출 시장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경쟁사로 대거 유출되는 SVB 인력

수년 동안 미국 스타트업의 핵심적인 자금줄 역할을 해온 SVB는 벤처대출과 관련한 많은 전문가를 보유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하지만 붕괴 이후 퍼스트시티즌스 은행에 인수되는 과정에서 사내에 큰 혼란이 발생했고, 이런 어수선한 분위기를 틈타 경쟁 은행들이 10년 이상 SVB에서 근무한 핵심 인력들을 공격적으로 영입하기 시작했다.

글로벌 자본시장 조사기관 피치북(Pitchbook)에 따르면 퍼스트시티즌스의 SVB 인수 이후 최소 78명의 인력이 경쟁 은행으로 이직했다. 미국의 투자은행인 스티펠(Stifel)과 모엘리스앤컴퍼니(Moelis & Co.)에 각각 12명과 14명, 미쓰비시 UFJ 파이낸셜 그룹(MUFG)과 JP모건 체이스에는 각각 8명, 7명이 이직했으며, HSBC에는 가장 많은 28명이 SVB로부터 이직한 것으로 조사됐다. 경쟁 은행들 사이에서 SVB가 퍼스트시티즌스에 인수돼 혼란스러운 상황을 벤처대출 시장에 진입할 절호의 기회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SVB 인력 등에 업은 은행들, 벤처대출 시장 진입 본격화

실제로 모엘리스앤컴퍼니는 △소프트웨어 앱 개발 △핀테크 및 페이먼츠 △온라인 및 대면 소프트웨어 개발 등 분야 전반에 걸친 신규 사업부를 이끌 인원들을 SVB에서 근무했던 이사와 상무 등 14명으로 채우는 모습을 보였다. 이와 관련해 모엘리스의 CEO 켄 모엘리스(Ken Moelis)는 최근 어닝콜에서 전 SVB 직원들의 채용에 대해 “이런 유형의 팀들은 자주 (시장에) 등장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최근 스타트업의 벤처대출 허브 역할을 위한 기반을 다지고 있는 스티펠도 SVB의 베테랑들을 대거 고용하면서 시리즈 A 스타트업에 대한 대출과 예금 서비스를 확장할 계획을 발표했고 수년간 벤처캐피털(VC) 시장 점유율 확대를 추진해 온 JP모건 역시 7명 이상의 임원을 SVB에서 고용했다. 특히 SVB의 전 VC 관리 담당 부서 부장인 파멜라 알즈워스(Pamela Aldsworth)를 영입해 VC 시장에서의 커버리지 전략을 수립하며 혁신적인 전자 상거래 은행을 구축하고 있다. HSBC는 지난 4월 SVB의 테크놀로지 및 헬스케어 부서의 부장인 데이비드 사보우(David Sabow)를 영입해 HSBC만의 고객 중심 전략에 대해 발표하며 벤처대출 시장에 발을 들였다.

SVB 파산에도 불구, 벤처대출 시장에 뛰어드는 이유는?

은행들이 SVB의 인력들을 대거 채용한 배경에는 벤처대출 모델에 대한 인식 변화가 주효했다. 그동안 SVB의 벤처대출 모델은 이미 투자받은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과거에 받은 투자금의 50%만큼의 금액을 대출해 주고, 이를 다음 투자가 이뤄지고 난 후에 상환하도록 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은 기업이 재투자를 이끌어내지 못할 경우 위험성이 상승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 실제로 지난해부터 본격화된 미 연방준비제도(Fed)의 강력한 금리 인상 기조로 인해 재투자에 어려움을 겪는 스타트업이 많아짐에 따라 해당 모델의 리스크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다만 리스크는 주식만큼 크지만 리턴은 채권과 비슷한 하이리스크-로우리턴 상품으로 인식됐던 벤처대출의 기조는 SVB의 파산 이후 전화위복을 맞은 모양새다. SVB의 파산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벤처대출 모델인 무리한 지분 투자보단 SVB의 투자모델이 더 효과적이란 인식이 업계 전반에 퍼지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Fed의 금리 인상 이후부터 많은 스타트업이 유동성 확보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어 상대적으로 불리한 조건임에도 벤처대출을 받아들이는 추세다. 여기에 더해 밸류에이션이 과거와 다르게 보수적으로 평가되면서 투자자들에게 유리한 시장이 형성됐다.

벤처대출 시장만의 독특한 특성 역시 SVB 인력의 대규모 영입의 배경 중 하나로 꼽힌다. 피치북의 투자 데이터 서비스 분석가인 카이디 가오(Kaidi Gao)는 “벤처대출 시장은 관계 지향적인 특성을 가진다”고 분석했다. 스타트업들이 최근 신규로 벤처대출 서비스를 시작한 은행보다는 과거부터 오랜 기간 벤처대출을 진행해 왔던 SVB와의 관계를 유지하고자 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SVB 인력 영입 전략이 유효하게 작용할지, 혹은 SVB를 인수한 퍼스트시티즌스가 경쟁사들을 제압하고 여전히 업계를 주도할 것인지 업계의 이목이 집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