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분기 벤처투자 60% 급감했지만, “거품 빠졌을 뿐 여전히 건재”

올해 1분기 벤처투자액 급감, 고금리 등 영향으로 투자심리 위축 영향 기업가치 평가절하되는 기업들, 일각에선 이제야 거품 빠지는 것이라는 지적도 모태펀드 늘리겠다는 정부 정책 능사 아냐, 투자처 판단 능력 제고가 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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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분기 신규 벤처투자액이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60%나 급감했다. 실물경기 둔화와 고금리 등의 영향으로, 지난해 하반기 거듭하던 하락세가 해를 넘겨도 회복세를 되찾지 못하는 모양새다. 특히 신규 벤처펀드 결성금액은 80%가량 급감해 벤처투자 혹한기의 지속 시간은 장담하지 못할 정도로 길게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중기부는 “작년 이후 지속된 실물경기 둔화, 고금리에 따른 자금조달 비용 증가, 금융시장의 불확실성 확대 및 회수시장 부진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며 “이와 함께 각국 통화 당국의 단기간 금리 인상에 따른 유동성 축소 등도 복합적으로 작용해 하락폭이 늘어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투자 집행이 차츰 재개되고 있긴 하나 단기간에 투자심리가 급격히 회복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이 때문에 내년 상반기 이후에나 투자심리가 회복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에 일각에선 ‘벤처투자 위축이 이어지는 바로 지금이 새로운 시장 흐름에 맞는 육성 정책을 내놓을 때’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투자심리 회복을 위해 정부가 직접 발 벗고 나서야 한다는 뜻이다.

벤처투자금액, 전년 동기 대비 60.3% 급감

17일 중소벤처기업부는 올 1분기 벤처투자 및 펀드 결성 동향을 발표했다. 중기부에 따르면 올 1분기 신규 벤처투자금액은 8,815억원으로 전년 동기 2조2,214억원 대비 60.3% 감소했다. 신규 투자 건수도 1,520건에서 885건으로 41.8% 감소했다. 역대 최대 감소세다. 중기부가 지난해 4분기 발표에서 벤처투자금액이 전년 대비 43.9% 줄어들었다고 밝힌 것과 비교해보면, 직전 분기 대비 15%p 이상 하락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기록적인 성장세를 보인 지난해 벤처투자 상승분의 약 절반가량이 빠져나간 것이다.

다만 이번 투자액은 2020년 1분기와 비교했을 때는 14% 증가한 수치다. 이례적인 상승세를 기록했던 지난 두 해를 제외하면 국내 벤처투자 시장은 일정한 투자액을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실제 중기부가 국무조정실에 제출한 올해 신규 투자목표액은 5조1,000억원밖에 되지 않는다. 이는 지난해 신규 투자액 6조7,640억원의 75% 수준이나, 2020년에 비해선 18.6% 증가한 액수다.

성공한 K-콘텐츠의 대표적 예시/사진=넷플릭스, CJ ENM

거품 빠지기 시작한 벤처투자, 투자 양상도 많이 변했다

이에 일각에선 벤처투자에 낀 ‘거품’이 드디어 빠지기 시작했다고 지적한다. 그간 급격하게 벤처투자 규모가 증가하는 동안 시장 상황은 많이 변했다. 이로 인해 회수시장 부진으로 인해 성장 단계에 이른 기업들의 기업가치는 날로 평가절하되고 있다. 대형 투자의 상당 비중을 차지했던 후속 투자 역시 축소되는 추세다.

1분기 기준 창업 3년 초과 7년 이하의 중기 창업기업에 대한 투자는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71.1% 급감하기도 했다. 창업 3년 이하 초기기업이 58.6%, 7년 초과 후기기업이 43.4% 감소한 데 비하면 감소폭이 유독 크게 다가온다. 투자액 기준으론 1조205억원에서 2,948억원으로 총 7,257억원이 감소했으며, 전체 투자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33.4%로 지난해(45.9%)에 비해 크게 줄었다. 한편 후기기업에 대한 투자 비중은 37.9% 수준으로 늘었다. 투자 기업의 기업가치가 날로 하락함에 따라 새로운 기업을 발굴하기보단 비교적 안정적으로 단기간에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후기기업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져 투자가 늘어난 것으로 풀이된다.

업종별 투자 양상도 변했다. 당초 코로나19 기간 동안 대규모 투자가 이뤄졌던 분야는 ICT서비스, 유통·서비스, 바이오·의료 등이었다. 그러나 해당 분야는 올 1분기 신규 투자액이 반토막 났고, 반면 영상·공연·음반 분야는 유일하게 신규 투자액이 늘었다.

유통·서비스업종 투자금액은 1,028억원으로 전년 동기(4,570억원) 대비 77.5% 급감했다. ICT서비스(1,986억원)와 게임업종(196억원)은 전년보다 각각 74.2%, 73.7% 감소했다. 바이오·의료업종도 전년 동기(4,137억원) 대비 63.3% 줄어든 1,520억원이었다. 반대로 영상·공연·음반 업종에 대한 투자는 1,102억원으로 전년 대비 8.5%나 증가했다. ‘K-콘텐츠’의 수요가 지속적으로 늘면서 해당 업종에 대한 투자심리도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민간 출자자 벤처투자 감소세 두드러져

이번에 발표된 벤처펀드 투자액 동향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민간 출자자의 벤처투자 감소세가 두드러지게 나타났다는 점이다. 올 1분기 비모태펀드 결성금액은 총 3,599억원으로 전년 동기 2조1,992억원 대비 83.6% 감소했다. 1분기 모태자펀드 결성금액은 2,097억원으로 지난해 동기 대비 55.2% 줄었다. 투자금을 단기간에 회수하기 어려운 상황이 지속되자 민간 출자자들이 벤처펀드에 보수적으로 출자하게 된 것이 원인이다.

투자자별로는 연금 및 공제회의 출자가 전년 대비 96.1% 감소하며 가장 많은 감소세를 기록했다. 정책금융 출자자 중에서는 성장금융이 1분기 전년보다 75% 줄어든 639억원을 출자하며 모태펀드(786억원), 기타 정책기관(652억원)보다 보수적인 투자 기조를 보였다. 이에 일각에선 정부 차원에서 모태펀드를 조성하고 정책 수단을 병행해 투자심리를 회복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부까지 나섰지만, “펀드 금액만 늘린다고 만사 해결 아냐”

투자심리 위축이 극심해지자 정부 차원에서도 나름의 타개책을 내놓았다. 정부는 정부 모태펀드를 줄이고 민간 모태펀드를 늘리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지난 11일 정부는 벤처투자법을 개정해 기업에 직접 투자하는 벤처투자조합에 더해 벤처투자조합에 대한 간접·분산 출자를 통해 안정성을 높일 수 있는 ‘민간재간접벤처투자조합’ 결성의 근거를 마련했다.

‘민간재간접벤처투자조합’의 결성 주체는 중소기업창업투자회사, 신기술사업금융회사, 자산운용사 등이며 정부는 대규모 펀드 운용 경험 및 역량, 출자자 모집 능력을 보유한 벤처캐피털(VC)이 참여할 수 있도록 차차 하위 법령을 개정해 결성 주체와 관련한 세부 요건을 구체화할 예정이다. 또한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가 더욱 확대될 수 있도록 출자금 총액의 일정 비중 이상을 벤처투자조합에 의무적으로 출자하도록 했다. 정부는 또 민간재간접벤처투자조합이 활발히 조성될 수 있도록 개인 출자자에 대한 소득 공제, 부가가치세 면제, 스타트업 주식 양도차익 비과세 등 인센티브제도 함께 추진한다.

그러나 펀드 금액만 늘린다고 모든 게 해결되진 않는다는 목소리도 높다. 오히려 좋은 투자처를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거품이 빠진 이후에도 합리적인 투자가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주장이다. 이번 정부 정책으로 민간 차원의 투자가 제대로 이뤄질지 여부는 차치하고서라도, 좋은 투자처를 찾을 개인의 판단력이 이전보다 더 중요해질 것임은 명백하다. 이와 관련해 김우영 컴퍼니케이파트너스 이사는 “좋은 투자처를 발굴하고 투자를 집행해야 하는데, 그런 측면에서 항상 개인적인 역량이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다”고 지적했다.

투자 혹한기가 이어진 이번 1분기, 의외로 정부는 비교적 선방했다는 분위기다. 2021~2022년의 폭발적인 증가세가 오히려 이례적이었단 시각이다. 중기부에 발표에 따르면 같은 기간 미국은 55%, 이스라엘은 73.6%씩 벤처투자가 줄어들었는데, 이와 비교해보면 한국의 투자액 감소폭 차이는 다른 국가 대비 큰 편이 아니기도 하다. 올 1분기 실적에서 벤처투자액이 지난 분기 대비 다소 크게 줄어든 결과를 보이긴 했지만, 아직 절망적인 상황은 아니라는 뜻이다. 벤처투자는 여전히 건재하다. 결국 앞으로 중요한 건 기업과 개인의 역량이 얼마나 성장할 수 있느냐에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