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 공급 문제로 홍역 앓는 벵갈루루, 우리나라도 대비해야

인도의 실리콘밸리 ‘벵갈루루’, 임대료 지난해 대비 약 2배 폭등 우리나라도 크게 다르지 않아, 강남권에선 ‘주세’ 유행하기도 “재택근무 별로 신경 안 써요”, 어디까지나 중요한 건 ‘직장 밸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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벵갈루루 전경/사진=Reuters

‘인도의 실리콘밸리’라 불리는 벵갈루루의 임대료가 지난해 초 이후 거의 두 배 가까이 올랐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재택근무가 시행되면서 벵갈루루를 떠났던 직장인들이 다시 돌아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임대인들이 팬데믹 기간 동안의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임대료를 더욱 비싸게 받기 시작했다는 점도 임대료 상승의 큰 원인으로 작용했다.

‘인도의 실리콘밸리’ 벵갈루루, 주택 공급 부족으로 ‘몸살’

인도 카르나타카주의 주도인 벵갈루루엔 구글, 아마존, 액센츄어 등 글로벌 기업의 직원들을 포함해 약 150만 명에 가까운 근로자가 거주하고 있었다. 그러다 지난 2019년 코로나19 팬데믹이 발생하며 재택근무를 시작하게 되자 대부분의 인원들이 벵갈루루를 떠났다. 구태여 직장 근처에서 좀 더 높은 임대료를 줘가며 벵갈루루에 머무를 이유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코로나19가 엔데믹 단계에 들어서며 상황은 급변했다. 재택근무가 점차 종료됨에 따라 직장인들은 다시금 벵갈루루로 돌아가야 할 이유가 생긴 것이다. 임대인들의 보상심리와 압도적으로 쏠리는 직장인 수요의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었던 탓에 집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려워진 것이다. 혹자는 “벵갈루루에서 집을 구하는 게 구글 면접을 통과하는 것과 거의 비슷하다”고 평할 정도였다.

급격한 주택 공급 부족으로 인한 특별한 절차도 생겨났다. 부동산 중개인과 집주인이 임차인에게 프로필과 이력서를 요구하고 ‘줌(Zoom)’을 활용한 인터뷰까지 보기 시작한 것이다. 벵갈루루에 집을 구하게 된 A씨는 “지난 2월 벵갈루루에서 월 5만 루피(한화 약 79만원)에 침실 2개짜리 임대 주택을 구했는데, 뉴델리 구르가온 지역에서 살던 아파트의 1.5배에 달하는 금액이면서도 크기는 절반에 불과하다”며 “그래도 나는 머리 위 지붕을 찾았으니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전했다.

이 같은 사태의 원인은 팬데믹 기간 동안 주택 건설이 중단됐기 때문이다. 들어올 사람이 없어져 공급을 줄였던 벵갈루루에 대한 수요가 갑작스럽게 늘어남에 따라 경쟁이 치열해지고 가격이 급등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벵갈루루는 올해 1분기 13,560채의 주거용 주택을 공급하는 데 그쳤다. 이는 겨우 3% 늘어난 것으로, 뭄바이 주택이 같은 기간 55% 증가한 것과 비교된다.

우리나라서도 ‘월세 대란’, 대학가로 돌아가는 이들도

우리나라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코로나19가 엔데믹 단계에 들어서기 시작한 지난해 2분기, 전국 오피스와 중대형 상가의 공실률이 크게 줄어들면서 임대료가 상승하는 모양새를 보였다. 재택근무 종료 및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에 따른 상권 회복 기대감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특히 재택근무 종료에 따라 직장으로의 교통 여건이 우수한 거점 오피스 임차 수요가 대폭 증가했다.

이에 대한 직장인들의 고통은 절대 적지 않다. 게임 회사에 근무한다는 B씨는 “재택근무를 시행하던 회사가 방역 지침 완화를 이유로 사무실 출근을 지시했는데, 여러모로 고민이 많다”며 “가까운 오피스를 구해 출퇴근 시간을 줄이면 매월 주거비용이 너무 많이 나가고, 그렇다고 주거비용을 줄이자니 출퇴근 시간이 왕복 2시간에 달한다”고 토로했다. 강남 회사 근처의 집은 15년이나 지난 구축 원룸 월세가 65만원에 달하는 등 인플레가 매우 심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직장 근처 월세 부담이 심해지자 서울 강남·종로구, 영등포구 여의도 등 직장과 가까운 도심 지역에 거주하던 젊은 직장인들이 대학가로 돌아오는 사례도 늘고 있다. 고금리, 고물가 상황이 이어지는 데다 임대료까지 오르니 차라리 물가가 저렴하고 익숙한 대학 인근에 계속 거주하는 방식을 택하는 것이다. 한 디자인회사에 취직이 결정된 후 근처 원룸으로 이사하려 했다는 C씨는 “직장 근처로 이사하기 위해선 최소 2,000만원 이상의 보증금이 필요하더라”라며 “그래서 결국 이사를 포기하고, 재택근무할 때 5,000원짜리 학생 식당을 이용하며 식비 부담을 줄이고 있다”고 밝혔다.

임대료 문제 있지만, “재택근무는 옵션일 뿐”

이 같은 임대료 문제로 인해 재택근무를 선호하는 직장인들이 많아지고 있는 추세다. 직장인 커뮤니티에선 ‘전면 재택이 연봉 1,000만원 이상의 가치’라는 말도 나온다. 재택근무를 하게 되면 수도권보다 주거 비용이 저렴한 지방에 거주하면서도 근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재택근무의 실시 여부 자체가 이직을 고려할 정도는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한 설문조사에서 ‘이직을 고려할 때 재택근무 여부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묻자 57%의 사람들이 ‘연봉이 비슷하다면 재택근무 하는 곳으로 가겠다’고 답했다. 결국 ‘연봉이 얼마인가’가 더 중요한 것이다.

재택근무가 종료된 이들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다. 재택근무 종료를 경험한 이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재택 축소 또는 종료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라는 질문에 68%의 사람들이 ‘하면 좋고 아니면 말고 같다’라고 답했다. ‘재택근무를 하는 곳으로 이직하겠다’는 이들은 20%에 불과했으며, ‘오히려 재택근무가 사무실 출근보다 힘들었다’고 답변한 사람도 12%로 집계됐다.

재택근무 또한 일장일단이 있는 법이다. 재택근무는 출퇴근 시간에 드는 시간을 아낄 수는 있으나 업무 환경이 일에 집중하기 좋지 않을 수 있다는 점, 직장과의 소통이 어렵다는 점 등이 단점으로 꼽힌다. 때문에 재택근무의 여부보단 해당 직장이 어떤 회사인가, 연봉은 얼마를 줄 수 있느냐가 이직 여부를 결정하는 데 더 큰 지분을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임대료와 주택 공급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는 벵갈루루의 경우도 이 같은 설문조사를 뒷받침한다. 제아무리 재택근무가 종료되고 주변 임대료가 비싸다 한들 직장 자체의 ‘밸류(value)’가 더 중요하기에 다시금 벵갈루루로 사람들이 쏠리게 된 것이다.

벵갈루루의 사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나라도 서울 강남권 등 목이 좋은 지역의 오피스는 이미 값이 오른 상태다. 특히 고금리 등 영향으로 보증금 구하기에 어려움이 많아져 보증금 없이 주마다 세를 내는 ‘주세’가 증가하는 추세이기도 하다. 벵갈루루는 급격한 수요 쏠림 현상을 예상하지 못해 홍역을 앓고 있으나, 우리나라의 경우 급진적인 변화는 일어나지 않고 있다. 충분히 변화를 감지할 시간이 있다는 의미다. 앞으로 주거 경향이 어떻게 변해갈지 예상하고 미리 대비해 놓아야만 벵갈루루 꼴을 면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