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임금低고용] ② 고등교육 강화해 고부가가치 사업 키워야

한국, 주변 경쟁국 대비 임금은 높고 생산성은 떨어져 노동 생산성 낮은 것에 그치지 않아, 기업들의 기술력도 부족 근본적으로 대학 교육 수준이 낮은 탓, 고등교육부터 개혁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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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직 플랫폼 운영 기업 잡코리아에 따르면 2021년 기준 한국 대기업 직장인들이 체감하는 정년퇴직 시기는 평균 49.5세다. 중소기업 및 공공기관 등으로 확장해도 평균 연령은 51.7세로 나타났다.

공무원, 교수 등의 일부 직군이 법으로 정한 정년인 60대 중반까지 직업이 유지되고 있으나, 실제로 직장인들은 ‘부장 달면 퇴직’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셈이다. 인사 전문가들은 업무 이해도, 체력 등을 종합했을 때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이 최대 업무 효율이 나올 수 있는 시기고, 50대가 넘어가면 대부분은 급여 대비 생산성을 유지하기 어렵다고 판단한다. 임금피크제로 55세 이후 직원들에게 고용을 보장하지만 급여를 낮추는 시스템이 도입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사진=SimpleLearn

생산성, 합리적인 평가 잣대는?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HBR)에서는 직원의 생산성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노동 생산성의 구성 요소 4가지를 꼽는다. 국가의 노동-자본 결합 생산성, 기업의 생산성, 노동자의 역량과 체력이다. 경제성장론에서는 국가의 노동력과 자본 투입으로 설명되지 않는 부분을 국가 단위의 생산성으로 계산하고, 같은 방식으로 경영학에서는 산업군의 생산성, 기업의 생산성을 계산해 계량화한다. 반면 노동자의 역량과 체력은 공통된 잣대를 찾아내기 어려워 일반적으로는 기업들의 내부 인사 시스템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연세대 경제학과 김정식 교수는 생산성의 직접 비교가 불가능한 점을 주변 사례와 비교하는 방식으로 풀어냈다. 한국 근로자의 생산성과 급여 수준이 적절한지 잣대로 삼기 위해 홍콩, 대만, 일본 등을 활용한 것이다. 김 교수에 따르면 한국 근로자의 대졸 초임 임금은 홍콩, 대만 대비 2배 이상 높고, 생애 최고 임금은 3배에 달한다고 설명한다. 1인당 국민소득 수준의 경우 최근에야 일본을 따라잡았으나, 급여 수준은 1인당 국민소득 격차가 2배 이상 나던 2000년대 초반부터 일본보다 높았고, 생애 최고 임금도 일본과 독일은 홍콩, 대만 대비 2배에 지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높은 급여를 받을 수 있을 만큼의 국가 단위, 산업 단위, 기업 단위의 생산성이 갖춰졌는지 확인할 수 있는 잣대인 1인당 국민소득 수준이 경쟁국 대비 낮은 상태에서, 정작 노동자의 임금만 더 높았던 것이다.

국가, 기업, 노동자가 모두 노력해야 생산성 향상된다?

김 교수는 급여 수준을 비교국가의 생산성 지표와 맞추기 위해 노·사·정 모두가 급여 수준을 조정하는 데 합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버거 & 피셔(2013)에 따르면 국가 단위의 성장이 단순히 개발도상국으로 성장하는 데뿐만 아니라 선진국으로 올라서는 데도 교육된 인력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설명한다. 교육된 인력이 투입되어야 기존 산업에서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도전을 할 수 있고, 고부가가치의 신산업에도 도전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실리콘 밸리에서 직장 생활 후 국내에서 스타트업을 운영 중인 A씨는 “실리콘 밸리에서 하던 도전을 국내에서 해 보려고 해도 적절한 인력을 구하지 못해 몇 년의 시간을 버렸다”고 답변했다. 이어 “한국은 기술력이라는 게 실제로 시스템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아니라 다른 시스템을 얼마나 빨리 베꼈나를 보는 곳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며 “시스템 개발을 할 수 있을 만큼 직군 훈련이 되어 있고, 새로운 지식을 직장에서 배울 수 있을 만큼 빠른 습득 속도를 가진 인력을 찾는 데 포기했다”고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K대 교수 B씨는 인공지능 시대를 맞아 코딩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학교에 단순 코딩이 아니라 배운 지식을 응용할 수 있는 사고력 코딩을 해야 한다고 몇 년째 주장하고 있으나, 학교 측으로부터 학생들이 따라오지 못한다는 이유로 배제당하고 있다고 답했다. B 교수에 따르면 사고력 코딩의 예시로 제안했던 사안은 해당 전공의 학부 1학년 기초 과목에서 배우는 내용들로, 교양 과목 수준의 이해를 단순히 책 속의 글자로 끝낼 것이 아니라 코드 작업을 통해 그래프를 그리고, 여러 정보들을 비교하면서 이해가 깊어질 수 있는 예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B 교수의 안타까운 내용을 전해 들은 A씨도 “그간 100명을 채용했으나, 그런 응용력을 갖고 회사 업무를 할 수 있는 경우는 상위 10%에도 못 미친다”고 답변했다. 한국이 교육기관, 노동자, 기업 등의 주요 경제 활동 영역에서 전반적으로 업무 역량이 떨어진 채로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고등교육부터 먼저 바뀌어야 생산성 향상된다

B 교수는 영미권 주요 대학의 학부 고학년들이 배우는 내용들 중 상당수가 국내 대학의 석사 과정, 심지어는 박사 과정에서 배우는 내용이라는 것을 강조하며, 한국의 인력 수준이 떨어지는 데 대학 교육이 가장 근본적인 문제를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스위스AI대학을 운영 중인 한 스타트업 대표 C씨에 따르면 국내에서 2010년대에 S대 경제학 박사 과정 기말고사 시험 문제로 나왔던 내용이 영국의 L모 명문대 학부 3학년 기출 문제보다 수준이 낮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C씨는 실제 시험 문제를 공개하며 한국과 영미권 주요 대학 간의 교육 격차가 매우 심각한 상황이라는 것을 확인시킨 바 있다.

대치동 학원 업계의 10년차 종사자라고 밝힌 D씨는 C씨가 내놓은 학부 입학생 대상 요구 조건을 보고 “과고, 외고, 자사고 등의 특목고 입시를 위해 선수 학습에 많은 비용을 쓰는 대치동에서조차 보지 못한 내용”이라며 “이 정도를 해야 따라갈 수 있다고 한다면 한국인 대부분은 탈락할 수밖에 없다”는 의견을 냈다. 과거 L모 대학의 한인학생 모임 대표를 맡았던 E씨는 “학부를 한국에서 나온 한국인들은 성적이 안 나와서 졸업을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인 탓에 졸업장을 받을 수 있는 최소 요건만 나와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는 속사정을 밝히기도 했다.

국내에서 인력을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은 A씨는 “결국 타협하고 한국 사정에 맞는 사업 모델만 키우는 중”이라며 “어쩔 수 없이 생산성이 낮고 노동집약적인 업무를 하게 됐다”며 불편함을 숨기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