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디스플레이의 자존심 ‘JOLED’ 추락, ‘도미노 파산’ 현실 되나

‘잉크젯프린팅’ JOLED 급추락, 수율 문제가 원인 우리나라도 상황 좋진 않아, 中에 따라잡힐 위기 경쟁은 곧 ‘성장 동력’, 셰르파 없이도 국난 이겨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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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LED가 잉크젯프린팅 방식으로 만든 4K 해상도 모니터용 OLED/사진=JOLED

일본 디스플레이의 마지막 자존심이 산산조각났다. JOLED가 파산 절차에 돌입한 것이다. 28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JOLED는 누적 부채 규모 337억 엔(한화 약 3,350억원)을 기록했다. 이에 따라 JOLED는 차차 사내 직원을 모두 해고하고 보유 기술을 공기업 성격의 JDI에 매각할 계획이다. 일본 디스플레이 산업의 부활을 기대하고 설립된 ‘민관 연합군’이 무너져 내리는 순간이다.

‘다크호스’였던 JOLED, 추락은 한순간에

당초 일본은 2000년대 중반까지 글로벌 디스플레이 1위국에 빛났다. 그러나 이후 LCD(액정표시장치) 패널 기술에 일찍이 투자한 LG·삼성 등 우리 기업들에 추월당하며 존재감이 희석되기 시작했다. 그나마 JOLED는 디스플레이 경쟁이 LCD에서 OLED로 전환하는 시점에 한국 기업 기술보다 20~30% 효율적이라는 ‘잉크젯프린팅’ 기술을 개발, 업계의 다크호스로 부상했다.

그러나 JOLED의 야심은 한순간에 무너졌다. 잉크젯프린팅 방식 유기발광다이오드 패널의 낮은 수율(전체 생산품 중 양품이 차지하는 비율) 탓에 제대로 된 수익을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황새 따라잡으려다 가랑이 찢어진 격이다. JOLED는 잉크젯프린팅 패널 생산을 위해 한화 약 1조원에 달하는 시설 투자까지 감행했으나 이 또한 JOLED의 추락을 더욱 가속할 뿐이었다.

이에 대해 한 디스플레이 업계 관계자는 “JOLED는 아직 제대로 된 판매처를 채 구축하지도 못한 상황에서 대규모 자금이 필요한 첨단기술 투자에 매진했다”며 “경기 침체에 상당히 취약한 구조였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JOLED가 양산에 성공한 제품은 PC에 주로 사용되는 중형 디스플레이뿐, TV나 스마트폰에 알맞은 대형·소형 제품은 대규모 양산에 실패했다.

코로나19도 JOLED에 악재로 다가왔다. 당초 JOLED는 지난 2020년부터 자동차용 OLED 패널 양산을 계획하고 있었으나 코로나19 확산 및 자금력 부족 등으로 계획을 연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그해 중국 TCL이 JOLED 지분의 약 10.76%를 300억 엔(한화 약 2,950억원)에 인수하는 것으로 자금을 조달했으나 OLED 패널 수율 상황이 좋아지는 일은 없었다.

삼성·LG도 상황 좋지 못해, 일각에선 ‘도미노 파산’ 우려도

앞으로 디스플레이 산업도 메모리·반도체 산업처럼 극소수의 선두 기업만 살아남는 형식으로 재편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메모리·반도체 산업은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한국·미국·유럽·일본 등 글로벌 기업들이 치열한 경쟁을 펼쳤으나 끝없는 출혈 경쟁이 이어진 후 최종적으로 기술 우위를 점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 3강 체제로 재편됐다. 디스플레이 산업 역시 앞으로 우리나라의 삼성, LG, 그리고 중국 1위 디스플레이 업체 BOE의 3강 체제로 재편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상황도 마냥 좋기만 한 건 아니다. 인력 부족, 적자 등 문제가 수없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고용정보원과 한국산업진흥원이 지난달 30일 발표한 ‘2023년 상반기 주요 업종 일자리 전망’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 제조업의 미충원율은 20%에 달했다. 특히 디스플레이 산업의 경우 지난해 하반기 6,000명을 구인했으나 3,700명가량밖에 채우지 못해 미충원율 37.9%를 기록했다.

LG디스플레이는 지난해 1조2,000억원에 육박하는 대규모 누적 적자를 기록하며 일부 인력을 계열사로 전환했다. LG디스플레이 측은 “구조조정은 아니다”라며 극구 부인했으나, 사실상 희망퇴직 내지 구조조정과 다를 바가 없다.

TV용 OLED 시장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LG디스플레이마저 사정이 좋지 못하자 일각에선 글로벌 디스플레이 기업들의 도미노 파산이 이어질 수 있다는 불안감이 쏟아져나오기도 했다. 실제 일본 최대 디스플레이 제조사인 JDI는 최근 8년간 연속 적자를 기록하고 있으며, 대만 디스플레이 기업 AUO도 지난해 2분기부터 적자를 이어왔다. 중국의 BOE 또한 지난해 1~3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약 20% 수준이며, 순이익은 같은 기간 74% 폭락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엔데믹 단계에 접어들면서 IT 기기 전반의 수요가 급격히 줄어든 탓이다.

이재용이 강조한 ‘초격차 기술’, 정작 中에 따라잡힐 듯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이 같은 국난을 헤쳐 나가기 위해선 ‘초격차 기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그마저 중국에 따라잡히는 모양새를 보이면서 우리 기업들이 거듭 언급한 ‘초격차’의 이름이 무색해져 가고 있다. 상하이증권보(上海證券報)의 보도에 따르면 최근 중국 디스플레이 업체들은 LCD 생산을 줄이고 OLED를 중심으로 한 사업 전환을 추진 중이다. 특히 BOE는 TV용 대형 OLED 패널 상용화를 강력히 추진하고 있다.

중국은 중·소형 패널을 중심으로 OLED 시장 점유율을 대폭 끌어올리고 있다. 올 1분기 BOE의 플렉시블 AMOLED 출하량은 전년 동기 대비 50% 늘어나 세계 2위를 차지했고, 중국 디스플레이 업체 선톈마(深天馬)는 2021년 웨어러블 기기 OLED 출하량 세계 2위에 이름을 올렸다. 업계는 2024년이 되면 중국이 중·소형 OLED 생산 능력 세계 1위를 차지하게 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JOLED 지분을 확보한 것도 중국 입장에서 호재다. 중국의 TCL이 JOLED의 기술을 발판 삼아 잉크젯프린팅 OLED 패널 양산에 나설 수 있기 때문이다. TCL이 파산한 JOLED의 핵심 기술을 흡수해 OLED 기술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다는 의미다.

한국과 일본이 한 시대를 풍미했던 디스플레이 산업은 점차 중국 등 후발주자들에게 넘어가고 있다. 사실 이는 어찌 보면 필연적인 일일지 모른다. 후발주자들은 선발주자들의 기술을 가이드라인 삼을 수 있지만 선발주자들은 셰르파 없이 산을 올라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기는 곧 기회라 했던가. 경쟁은 곧 성장 동력의 이음동의어다. 파산의 우려도, 적자의 우려도 크지만 한편으론 작은 기대감이 샘솟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