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받고도 벤처 확인 안 하는 기업들 “필요성 못 느끼겠다”

벤처 확인 안 받는 기업 늘어, 왜? 어렵지 않은 벤처 확인, “그래도 굳이 할 이유가 없다” 꺼져가는 ‘2차 벤처 붐’, 활력 불어넣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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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신규 벤처투자를 받은 기업 중 벤처기업 확인을 받지 않은 기업이 18%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벤처기업 확인에 따른 혜택이 크지 않아서다. 당초 벤처 확인을 받은 기업은 정부로부터 압도적인 혜택을 받으며 성장할 수 있어 한때 ‘벤처 붐’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러나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기업에까지 혈세가 낭비된다는 지적을 받으며 지원책이 개혁된 끝에 벤처 붐도 시들해지는 분위기다.

26일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지난해 벤처투자를 받은 기업 2,007개 사 중 벤처기업 확인을 받지 않은 기업은 전체의 17.99%인 360개 사였다. 유니콘 기업으로 꼽히는 15개 사 중에서도 쏘카, 티몬 등 다수 기업이 벤처기업 확인을 받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벤처기업 인증은 어떻게?

벤처기업이란 ‘실패할 위험성은 높으나 성공하면 큰 수익이 기대되는 첨단 기술을 갖고 소수의 사람이 사업을 일으킨 중소기업’이다. 조금 다르게 이야기하자면 정부로부터 기술성이나 성장성을 인정받은 기업이란 의미다. 벤처기업으로 인정받은 기업들은 정부로부터 각종 지원을 받아볼 수 있다.

벤처기업으로 인증받을 수 있는 유형으로는 ▲벤처투자유형 ▲연구개발유형 ▲혁신성장유형 ▲예비벤처유형 등 4가지가 있다. 우선 벤처투자유형은 적격 기관으로부터 5,000만원 이상을 유치하고 자본금 중 투자금액의 비율이 10% 이상인 기업을 벤처기업으로 인증해주는 유형이다.

연구개발유형으로 벤처기업이 되기 위해선 기업부설연구소, 연구개발전담부서, 기업부설창작연구소, 기업창작전담부서 중 1개 이상을 보유해야 한다. 또한 직전 4분기 연구개발비가 5,000만원 이상, 총매출액 중 연구개발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5% 이상인 기업이어야 연구개발유형 벤처기업으로 인증받을 수 있다.

혁신성장유형은 벤처확인기관으로부터 기술의 혁신성과 사업의 성장성이 우수하다고 평가받은 경우 벤처기업으로 인증받을 수 있다. 예비벤처유형은 법인 또는 개인사업자 신청을 준비하면서 벤처기업확인기관으로부터 기술의 혁신성과 사업의 성장성이 모두 우수한 것으로 평가받으면 된다. 회사 설립이 채 완료되지 않은 시점에서 벤처기업으로 인증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벤처투자를 유치한 기업이 벤처 확인을 받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5,000만원 이상의 투자금을 유치하고 투자 유치 금액이 기업 자본금의 10% 이상이란 사실을 벤처캐피탈협회로부터 검증만 받으면 끝이다. 벤처투자를 유치했단 사실을 검증받는 것만으로 벤처기업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여타 유형도 크게 다를 건 없다. 한 기업의 대표는 “제도가 개편되며 사업의 도전적 역량 등 정성적인 부분을 많이 따지겠다고 하는데, 막상 해보면 그냥 서류만 본다는 느낌”이라며 “2020년, 2022년 두 번에 걸쳐 벤처 확인을 받았는데 크게 사업성을 따져주고 그런 느낌은 전혀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 기업은 처음엔 1.8억 대출 가능 보증서로, 두 번째엔 연 5,000만원 이상 연구개발비에 투자한다는 이유로 벤처 인증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벤처 확인을 받는데 크게 어려울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기업들은 왜 벤처 확인을 받으려 하지 않는 걸까.

기업들의 벤처 백안시, 이유는?

벤처기업계에서 이야기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제도 자체가 잘 알려지지 않았거나, 확인에 따른 이익이 매우 미미하거나. 벤처투자를 유치하고도 벤처 확인을 받지 않았다는 한 기업의 대표는 “현행 제도상 벤처 확인에 따른 실익이 전혀 없다”며 “투자 유치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채용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데 굳이 벤처 확인을 받아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벤처기업으로서 인증받으면 받을 수 있는 혜택은 최초 5년간 법인세·소득세·취득세 50% 감면, 부동산 매입 시 취득세 75% 감면 등이 있다. 그러나 이 같은 혜택들이 사업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벤처기업들에 큰 의미가 없다고 업계 대표들은 말한다. 이제 막 시작된 스타트업들이 취득세를 낼 만한 부동산을 매입할 일이 있지도 않을뿐더러 기업 자체가 큰돈을 벌지 못하니 법인세 감면 효과도 크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로 중소벤처기업부로부터 유니콘 기업으로 꼽히던 쏘카, 티몬 등 기업들도 지금껏 순이익을 내지는 못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최초 5년 법인세 50% 감면’ 혜택을 보다 효율적으로 받기 위해 돈을 벌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는 경우도 생겼다. 돈을 벌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벤처 확인을 받아 5년 동안 법인세를 감면받을 심산인 것이다.

기업들, 벤처 건너뛰고 이노비즈로

벤처 확인보다 이노비즈 인증 쪽으로 시선을 돌린 기업들도 다수 존재한다. 이노비즈란 기술경쟁력과 미래 성장 가능성을 갖춘 중소기업으로, 일명 ‘기술혁신형 중소기업’이라 불린다. 정부는 이노비즈 인증을 통해 기업들에 기술, 자금, 펀드 등을 연계 지원함으로써 국제 경쟁력 있는 우수한 기업을 육성하고 있다.

벤처기업은 일단 가능성이 있는 기업을 발굴해 지원 대상을 ‘모색한다’는 의미가 크다. 반면 이노비즈는 이미 좋은 기술력을 지닌 성장 가능성 높은 기업을 선정해 ‘밀어준다’는 이미지가 강하다. 이노비즈 인증을 받은 기업들은 기업혁신 개발사업 명목으로 3억원을 지원받을 수 있으며, 기업당 보증지원한도가 일반기업 30억원에서 50억원까지 확대된다. 이외 해외 진출 지원 등의 혜택도 받아볼 수 있다.

이 같은 압도적 지원 혜택 덕에 당초 기업들은 벤처 확인 5년 후 이노비즈 인증을 받는 게 왕도였다. 그러나 이젠 상황이 바뀌었다. 기업들이 벤처 확인 단계를 건너뛰고 있는 것이다. 과거엔 벤처 확인을 받으면 주가가 뛰어오르는 등 홍보 효과를 톡톡히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젠 벤처기업이 여기저기 널려 있는 탓에 사람들의 관심도, 홍보 효과도 떨어졌다. 기업들이 구태여 벤처 확인을 받을 이유가 사라진 것이다.

과거 2000년대 초반, 우리나라는 인터넷의 등장과 1997년 외환위기를 거치며 벤처 붐 시대를 맞이했다. 당시 대학에선 창업보육센터가 생기고 이공계 대학 실험실을 기반으로 한 이른바 ‘실험실 벤처’도 속속 생겨나며 벤처 업계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그러나 이러한 ‘닷컴 거품’은 빠르게 붕괴했다. 지난해까지 각종 보도 매체들은 우리나라에 ‘2차 벤처 붐’ 시대가 열렸다는 보도를 내놓은 바 있다. 이번 벤처 거품도 꺼질 일만 남았을까. 벤처계에 보다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선 단순한 세금 감면을 넘은 보다 본질적인 지원책 마련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