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용문 좁아지자 ‘연봉’ 중시하는 개발자들, 기업은 인재 ‘옥석 가리기’ 나서

채용문 좁아진 개발자, ‘성장’보다 ‘연봉’ 중요시하는 것으로 나타나 실력·경력 부족한 인재 과감히 쳐내는 기업, 다양한 검증 방식 등장 ‘코딩 학원’에서 양산된 역량 부족 인재들, 취업처 없어 이력 뻥튀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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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자들이 이직 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는 ‘연봉’과 ‘성장 가능성’인 것으로 나타났다. 25일 HR테크 기업 원티드랩은 원티드를 이용하는 개발자 508명을 대상으로 지난달 1~15일 진행한 온라인 설문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원티드랩에 따르면, 개발자가 이직 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요소(복수 응답)는 연봉(82.3%)이었다. 이어 △성장 가능성(61.3%) △근무 조건(52%) △동료(27.6%) △기술 스택(21.1%) 순인 것으로 나타났다.

‘개발자 모시기’의 시대는 갔다

지난 9월 발표된 유사 조사 결과를 살펴보자. 당시 커리어테크 스타트업 ‘퍼블리’가 운영하는 IT업계 직장인 SNS ‘커리어리’는 이용자 376명을 대상으로 <개발자가 이직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해당 질문 응답자의 52%는 ‘성장 가능한 업무 환경(능력 있는 CTO, 동료 등)’을 선택했다. 2위는 ‘연봉’ (24%), 3위는 ‘워라밸’ (7%)이었다.

해당 조사 결과는 이번 원티드랩의 조사 결과와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성장 가능한 업무 환경’이라고 응답한 사람의 비율이 ‘연봉’의 2배 이상을 웃돈 것이다. 당시 개발자들이 단순히 높은 연봉을 중시하기보다 본인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업무 환경에 매력을 느꼈음을 알 수 있다. 이때 ‘업무 환경’에는 서비스를 성공적으로 이끌어가는 시니어 개발자의 존재 여부, 기업 성장을 위해 개발자가 수행할 과제의 양, 개발 역량을 자유롭고 유연하게 펼칠 수 있는 기업 문화 등이 해당한다.

이 같은 조사 결과에는 당시의 ‘개발자 모시기’ 풍조가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개발자 연봉이 급속히 상향 평준화되고 채용 시장이 호황을 이루자, 개발자들 사이에서 개인 역량 성장 시 연봉은 자연스럽게 상승한다는 관점이 자리 잡은 것이다. 반면, 이번 원티드랩 조사에서는 연봉(82.3%)이 성장 가능성(61.3%)을 누르고 다시 1위로 올라섰다. 이는 최근 IT업계에서 요구하는 개발자 수준이 높아지며 취업문이 좁아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지난 2021년 IT 기업 연봉 인상 경쟁 이후, 글로벌 경기 침체가 찾아오며 개발자 채용 시장은 빠르게 위축됐다. 개발자에 대한 기준치가 높아진 기업들은 이전만큼 웃돈을 주고 개발자를 채용하려 하지 않는다. 이에 지난해처럼 높은 몸값 및 안정적인 일자리를 보장받지 못하게 된 개발자들이 역량 개발보다 연봉을 중시하게 된 것이다.

기업들, ‘실력’ 부족한 개발자 채용 안 한다

원티드랩 리포트에 따르면, 면접관은 개발자 주요 평가 항목으로 △커뮤니케이션 능력(77.6%)과 △프로젝트 경험(75%)을 중요한 평가 항목으로 꼽았다. 개발자 채용 시장이 호황일 때는 실력이 조금 부족한 개발자도 일단 채용하는 분위기였으나, 최근에는 원활한 업무 진행 능력 및 경력을 중심으로 꼼꼼하게 인재를 평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최근 기업들은 경력이 풍부하거나 실력이 검증된 개발자를 채용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개발자가 이직을 하기 위해서는 통상적으로 △이력서 심사 △코딩 테스트 혹은 사전 과제 △기술 면접 등을 거쳐야 하는데, 이를 통과하기가 어려워진 셈이다.

기업들이 이처럼 꼼꼼하게 인재를 선별하게 된 것은 인재 질 저하 및 소위 ‘뻥이력(구직 시 자신의 이력 및 경험을 부풀려 밝히는 것)’ 때문이다. 한 데이터 사이언스 기업 대표는 “‘뻥이력’에 많이 속았다”며 “이제 개발자 채용 시에는 단순히 코딩 테스트만 하고 끝내지 않는다. 아예 면접 때 실력을 평가할 수 있는 질문을 많이 하며, 최대한 시간을 쓰는 수밖에 없다”이라고 말했다.

원인은 교육기관 역량 부족과 경기 침체

이 같은 상황의 근본적인 원인으로는 ‘코딩 학원’의 난립이 지목된다. 개발자 취업이 큰 주목을 받은 2021년 이후, 수많은 비전공자가 코딩 학원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전액 국비로 AI, 빅데이터 등의 훈련 과정을 제공하는 ‘K디지털트레이닝(KDT)’ 프로그램 참가자는 2021년 1만 1,727명, 작년 10월까지 1만 7,518명 수준이었다. 개인 비용으로 수업을 듣는 학생까지 감안하면 취업을 위해 코딩을 배우는 인원은 이보다 훨씬 많다.

하지만 수요가 급증하자 검증되지 않은 훈련기관도 덩달아 늘었고, 실무를 수행하기엔 경력과 실력이 부족한 인력이 대거 양성됐다. 이들이 보다 좋은 직장에 취업하기 위해 이력을 부풀리는 사례도 자연히 증가했다. 기업 입장에서는 이런 인재를 채용할 경우 업무 성과에 지장이 생기는 것은 물론, 회사에서 ‘돈을 주고’ 직원을 교육해야 하는 리스크를 떠안게 된다.

최근 최저시급 상승 및 글로벌 경기 침체로 기업의 인건비 부담이 크게 가중된 상황이다. 기업들은 실력이 부족한 인재를 채용하고 가르칠 만한 여력이 없다. 이를 위해 개발자 채용 시 실력을 테스트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들이 등장했고, 자연히 요구 수준이 높아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