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투자 혹한기, 다운라운드부터 매각까지 ‘생존’ 전략 택하는 기업들

경기 침체로 이어지는 벤처투자 혹한기, 모태펀드 예산 감소로 위기감 고조 몸값 낮춰서라도 투자 유치하고, 구조조정으로 인건비 절감하며 ‘발버둥’ 티몬·쿠팡 등 자본잠식 빠진 기업, 투자 유치 실패하며 매각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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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스타트업 투자 시장에 찬바람이 불어닥쳤다. 금리 상승, 우크라이나 사태 등에 따른 경기 침체로 투자 심리가 크게 위축된 것이다. 17일 스타트업 민간 협력 네트워크인 스타트업얼라이언스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스타트업 투자 유치 금액은 총 11조 1,404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11조 7,286억원 대비 약 5%(5,882억원) 줄어든 수준이다.

설상가상으로 올해 벤처투자 마중물 역할을 수행하는 모태펀드 예산이 40%가량 감소하며, 일각에서 ‘스타트업 줄도산’에 대한 우려마저 제기되고 있다. 실제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조사에 따르면, 대다수 창업자가 지난해 하반기에 이어 올해도 힘든 한 해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창업자 40.5%가 지난해 분위기에 변화가 없을 것으로, 37%가 지난해보다 부정적으로 변화할 것으로 예상한 것이다. 이에 스타트업들은 혹한기 속 생존을 위한 전략을 채택하고 있다.

몸값 낮춰서라도 투자 유치하는 기업들

돈줄이 마른 일부 스타트업은 기존보다 몸값(기업가치)을 낮춰 투자를 받는 다운라운드(down round)도 마다하지 않는 추세다. 일례로, 명품 e커머스(전자상거래) 플랫폼 발란은 지난 4월 1,000억원 규모 시리즈C 투자 유치를 추진하며 예상 기업가치를 8,000억원으로 봤다. 직전 자금 조달 시 평가받은 기업가치 대비 4배가량 높은 수준이다. 하지만 지난 10월 투자를 마무리하면서 직방이 인정받은 기업가치는 3,000억원, 투자금은 250억원에 그쳤다.

국내 프롭테크 1위 업체인 직방은 상장 전 투자유치(프리 IPO)를 추진하며 기업가치를 2조 4,000억원으로 매겼다. 올 초 시장이 전망하던 3조원 대비 20%가량 낮은 수준이다. 직방의 프리IPO(상장 전 지분투자) 투자 규모는 1,000억원 안팎에서 마무리됐다. 신선식품 유통 스타트업 정육각은 상반기 시리즈 D 투자 유치에 나서면서 4,000억원 이상의 몸값을 예상했지만, 지난달 일부 자금을 조달할 때 평가받은 기업가치는 1,000억원 미만에 그쳤다.

‘인건비라도 줄이자’ 구조조정 단행

일부 스타트업은 경기 침체로 인한 자금 및 성장 여력 부족으로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있다. 재능 공유 플랫폼 탈잉은 구조조정을 진행하며 93명이었던 인력을 25명까지 줄였다. 이와 관련해 탈잉은 “어려운 경제 상황에 의도적으로 적자 전략을 내세우기보단 보수적인 흑자 경영을 위한 선택이었다”고 밝혔다.

지난해 부동산 중개 스타트업 집토스도 6개월 동안 220여 명에서 150여 명까지 30% 이상의 감원을 단행했다. 자금 운용이 여의찮아 인건비를 줄이기로 한 것이다. 집토스는 구조조정 이전 투자 유치를 추진한 바 있으나, 당시 계획한 만큼 자금을 유치하는 데 실패했다. 수산물 당일 배송 서비스 ‘오늘 회’ 운영사 오늘의식탁의 경우, 협력 업체에 대금을 지급하지 못할 정도로 휘청이다 결국 지난 9월 전 직원에게 권고사직을 통보했다.

국내 유명 유튜버들의 최대 소속사(MCN·다중 채널 네트워크)인 스타트업 샌드박스 네트워크도 감원 및 사업부 매각·축소를 포함하는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샌드박스는 전체 직원 560명 중 일부 직원들에게 권고사직을 통보했으며, 커머스 사업을 매각하고 e스포츠 대회 운영 사업을 종료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창업자 이필성 대표는 “시장 1등이라 무난히 투자를 유치할 줄 알았는데 상반기에 추진했던 대규모 투자 유치가 무산됐다”며 “3개월 비상 경영을 했지만 그래도 구조조정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발언한 바 있다.

문 닫느니 매각, M&A 선택하는 기업도

자금 부족으로 운영난에 처한 일부 기업은 폐업 대신 M&A를 선택하고 있다. 일례로, 지난해 1조원 정도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았던 배달 대행 플랫폼 ‘부릉’ 운영사 메쉬코리아는 후속 투자 유치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몸값을 2,000억원 수준으로 낮춰 매각을 추진 중이다.

지난 9월, 이커머스 1세대인 티몬도 적자 끝에 동남아 직구 업체 큐텐(Qoo10)에 매각됐다. 티몬은 해마다 수백억원 규모의 적자를 내며 수년째 자본잠식 상태에 빠져 있었다. 티몬의 매각 가격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업계에서는 티몬의 기업가치가 2,000억원대까지 떨어진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는 2019년 롯데그룹이 인수자로 나섰을 당시 매각가(1조 2,500억원), 지난해 초 기업 가치 평가 금액(5,800억원) 대비 크게 낮은 수준이다.

토종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업체 ‘왓챠’ 역시 투자 유치에 난항을 겪으며 매각설에 휩싸였다. 왓챠는 2021년 브릿지 라운드에서 3,300억원대 몸값을 인정받았으며, 지난해 상반기 착수했던 Pre-IPO(상장 전 투자 유치)에서는 기업가치가 5,000억원까지 거론된 바 있다. 하지만 왓챠는 2021년 말 이미 누적 결손금이 2,017억원을 넘어섰으며, 현재 완전자본잠식 상태다. 재무 위기가 좀처럼 회복되지 않자 결국 매각설이 불거지기 시작했고, 곧 LG유플러스가 왓챠의 투자 전 기업가치를 200억원으로 제시하며 인수전에 뛰어들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하지만 왓챠 기존 투자자들이 턱없이 낮아진 몸값에 반발, 매각을 반대하며 좀처럼 거래가 진전되지 않고 있다.

요즘과 같은 위기 속 M&A는 투자금 회수를 위한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실제 스타트업 시장이 활성화되어 있는 미국에서는 엑시트(투자회수) 수단으로 기업공개(IPO)보다 M&A를 더 선호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단, 공정거래위원회가 올해부터 온라인 플랫폼 기업 M&A 심사를 일반심사로 전환하겠다는 방침을 내놓은 만큼 오히려 M&A 활동이 저해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