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리, 코스피 상장 ‘무기한 연기’

금리 상승 등 여파로 기업가치 폭락 기존 투자자들 손실 가능성 커져 VC 업계 비상등 켜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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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컬리 홈페이지

새벽배송 서비스 마켓컬리를 운영하는 컬리가 코스피 상장 추진을 무기한 연기했다. 최근 투자심리 위축을 고려한 결정이다. 지난해 8월 코스닥 예심을 통과한 컬리는 상장작업을 2월23일까지 마쳐야 했다. 이달 말까지는 증권신고서를 제출해야 했는데, 결국 이번에는 철회를 결정했다. 2021년 말 밸류에이션(기업가치 평가) 4조원을 인정받았지만, 최근 1조원 안팎으로 떨어진 영향이 크다. 여기에 매년 적자가 늘어나는 등 재무이슈가 겹쳤다.

4일 컬리 측은 “글로벌 경제 상황 악화로 인한 투자 심리 위축을 고려해, 한국거래소(코스피) 상장을 연기하기로 했다”며 “상장은 향후 기업가치를 온전히 평가받을 수 있는 최적의 시점에 재추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기업 가치 폭락, ‘-81.9%’

사진=서울거래비상장 홈페이지

마켓컬리는 김슬아 대표가 2014년에 설립한 신선식품 판매 스타트업이다. 2018년 3월 30일 회사명을 주식회사 더파머스에서 주식회사 컬리로 변경했다. 고가 논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선한 식재료로 유명했다. 쿠팡 등의 기타 이커머스 회사들과 마찬가지로, 대기업과 경쟁하기 위해 적자를 감수하며 사업체를 확장하는 전략을 썼다. 2,500억원의 시리즈 F 투자에 이르기까지 계속된 투자를 받았다. 하지만 비상장 주식 거래 플랫폼 ‘증권플러스 비상장’에서 컬리의 비상장 주식은 현재 2만1,000원에 거래된다. 작년 말 컬리가 11만6,000원에 거래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간 주가가 무려 ‘81.9%’ 하락했다.

한국거래소 규정에 따르면 상장예비심사에서 승인받은 기업은 6개월 이내에 상장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작년 8월 22일이 승인일이다. 올해 2월 21일까지가 6개월의 기한이다. 여러 이유로 기한 연장을 요청할 수도 있지만, 시장에 나쁜 메시지를 줄 수 있어 연장을 선택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런데도 결국 무기한 연장을 선택했다. 상장 작업을 연기한 컬리는 재추진을 위해 예비심사부터 다시 받아야 한다.

사진=컬리 연결감사보고서 (2021.12)

2013년 창업부터 2021년 말까지 9년간 누적 투자 금액은 9천억원이다. 2021년 영업이익은 – 2,138억 5,225만원, 당기순이익은 -1조 2,766억원이다. 하지만 컬리 관계자는 영업 활동에서 현금 흐름이 있는 만큼 당장 위기에 처할 일은 없다는 반응이다. 

‘이 가격엔 상장 못한다’는 투자자들

업계에서는 컬리의 상장 포기 배경으로 투자자들의 반발을 꼽는다. 컬리는 상장 준비 과정에서 시리즈 A~F, 프리IPO 등을 통해 대규모 투자를 받아왔다. 투자자들은 컬리의 기업가치 평가가 투자 당시에 비해 절반 이하로 떨어진 시점에 IPO 강행을 꺼릴 수밖에 없다. 예컨대 컬리의 기업가치를 4조원으로 평가하고 2,500억원을 투자했던 ‘앵커에쿼티파트너스(앵커PE)’의 경우 주당 10만원대에 투자했다. 하지만 컬리가 이 가격대에 상장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컬리의 성장성에 이견을 갖는 분위기는 아니지만 후속 투자자들은 피해를 볼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컬리는 상장하지 않더라도 당장의 문제는 없다는 입장이다. 컬리 관계자는 “지난해 컬리는 이커머스 업계 평균을 크게 뛰어넘는 성장을 이뤘다”며 “계획 중인 신사업을 무리 없이 펼쳐 가기에 충분한 현금도 보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속적인 성장을 바탕으로 상장을 재추진하는 시점이 오면 이를 성실히 안내하겠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상장 연기로 컬리가 기업운영과 투자에 필요한 자금을 어떻게 확보할지는 관건이다. 컬리 재무구조상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추가적인 자금 유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상장 연기 … ‘기업가치’ 불신 확산

유통업계에서는 시장 상황 악화로 CJ올리브영 등이 상장 작업을 잠정 중단했다. 컬리와 함께 ‘자이언트 베이비’로 꼽힌 토스는 IPO 계획을 2~3년 뒤로 연기한 상황. 벤처캐피탈(VC)업계는 컬리의 상장 철회가 예견된 일이라는 반응이다. 시장에서 기업가치가 4분의 1 이하로 떨어진 상태였기 때문이다. 

컬리의 상장 연기는 VC업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관계자들은 VC 자금으로 몸집을 키워 국내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의 스타트업)으로 성장한 컬리의 상장 여부가 하나의 벤치마크라고 설명한다. 또 다른 VC 관계자는 “국내 유니콘 기업들은 컬리처럼 외부 자금조달로 기업가치를 키워왔다”며 “컬리의 기업가치가 가장 큰 걸림돌이 돼 상장을 철회하게 됐으니 후발주자의 몸값 재평가 요구가 더욱 거세질 것”이라고 말했다.

컬리는 동종업계 라이벌 오아시스와 함께 올 상반기 IPO(기업공개) 시장에서 기대를 모으는 기업으로 꼽혀왔다. 아직 코로나19(COVID-19) 팬데믹을 계기로 급성장한 이커머스 기업 중 증권시장에 상장된 곳은 없다. 컬리의 상장 연기는 오아시스, SSG닷컴, 11번가 등 후발주자들의 증시 입성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SSG닷컴은 2021년 10월 씨티그룹글로벌마켓증권과 미래에셋증권을 상장 대표 주관사로 선정했다. 앞선 2018년 사모펀드들의 투자를 받을 때 조건이 ‘2023년 상장’이었다.

컬리의 상장 연기로 새해 ‘이커머스 1호 상장’은 오아시스가 차지할 가능성이 크다. 오아시스마켓은 지난해 12월 30일 코스닥 시장 상장 예비 승인을 받았다. 오아시스는 올해 출시할 퀵커머스 ‘브이마트’ 사업을 위해 IPO를 추진하고 있다. 2021년 감사보고서 기준, 컬리는 오아시스에 비해 매출 규모가 4배 이상이다. 하지만 오아시스의 영업 이익은 57억으로 이커머스 업계에서 유일한 흑자다. 컬리의 -2,177억과 대비된다. 컬리의 상장 철회 소식에 장외시장에서 오아시스마켓의 주가가 전날보다 4.7%오른 2만 8,500원에 거래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