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투자 유치 깜깜, 다운라운드도 감당하는 분위기로

벤처투자업계 금기어였던 ‘다운라운드(Down Round)’도 마다않을 상황까지 치달아 폐업보다는 낫다는 생각에 너도나도 몸 값 낮추기 동참 최악의 상황인 메쉬코리아 본 이후 몸 사리기 추세 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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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투자시장이 급격히 얼어붙으면서 수익을 내는 스타트업들마저도 자금조달에 난항을 겪고 있다. 투자 유치가 어려워지자 일부 스타트업들은 벤처투자업계의 금기어였던 ‘다운라운드(Down Round, 기존보다 기업가치를 낮춰 투자받는 행위)’에도 거리낌이 없는 분위기다. 자칫 폐업 절차를 밟아야할 상황이기 때문이다.

다운라운드로 업계에 말이 오르는 가장 유명 인사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를 운영하는 왓챠다. 왓챠는 지난해 말 기업 가치가 5,000억원이라는 말이 나왔으나, LG유플러스에 매각이 진행 중인 현재의 기업가치를 200억원으로 평가받고 있다. LG유플러스는 400억원을 신규투자하며 이사회 의결권까지 확보해 자사의 OTT서비스 진출 교두보로 삼겠다는 방침이다.

명품 플랫폼 발란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기업가치 8,000억원으로 투자 유치를 진행했으나, 투자자들의 외면을 받으면서 어쩔 수 없이 3,000억원으로 기업가치를 큰 폭으로 낮췄다. 투자금도 1,000억원을 기대했으나 250억원에 만족해야하는 상황이 됐다.

절대 안 한다던 다운라운드, 이젠 다운라운드라도

스타트업 업계에서 다운라운드는 이른바 금기어였다. 투자사들은 회사 성장을 위해 투자한만큼, 기업가치가 2배, 3배에 이르지 못하면 투자 실패라고 인식하고 경영자를 쫓아내거나, 급여를 삭감하는 등의 강경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일반적인 벤처업계의 분위기였다.

그러나 손실을 감당하며 성장에 초점을 맞추던 벤처업계의 분위기가 경기침체로 인한 ‘옥석가리기’가 진행되면서 급격히 바뀌는 추세다. 성장을 뒤로 미루고 당장 생존에 초점을 맞추는 기업들이 크게 늘어난데다, 기존 투자사들도 추가 투자 여력이 없는만큼 폐업만은 피하자는 분위기가 됐다. 2배, 3배 부풀리기가 자칫 0원짜리 휴지조각 주식으로 바뀔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분위기가 급반전하면서 벤처투자사들은 시리즈C 이후의 후속 투자보다 초기 투자에 집중하는 추세다. 후속 투자의 경우 금액이 큰데다 시장 위축으로 자금 회수의 불확실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올해 기업공개(IPO)를 추진했던 스타트업들이 8월 쏘카의 흥행 참패를 목격한 이후 대부분 내년으로 IPO 일정을 연기한데다, 내년에도 시장 상황이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가 크지 않기 때문이다. 한 벤처투자업계 관계자는 차라리 시리즈C에 투자할 자금으로 시리즈 A, B에 2개 투자하겠다는 것이 업계의 분위기라고 전했다.

국내 스타트업들, 폐업 피하기 위해 최소한의 자금이라도 확보해야

데이터 분석 역량을 기반으로 보험 분석 서비스를 제공하는 해빗팩토리의 경우, 보험 업계로부터 광고 수익을 확보하면서 지난 7월에 흑자전환을 눈 앞에 뒀다는 보도를 냈었다. 심지어 미국 진출도 이뤄낸 스타트업이지만, 7월부터 진행한 300억원 규모의 시리즈C 투자유치를 결국 포기했다. 트랜스링크인베스트먼트 등 기존 투자자들이 약 100억원 규모로 후속 투자 의사를 밝혔으나 신규 투자자의 참여가 저조해 목표금액을 달성하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흑자전환이 눈 앞에 다가온만큼, 굳이 저가에 자금을 확보하려고 노력하기보다 내실을 다지는데 초점을 맞추겠다는 것이 내부 사정에 밝은 관계자의 말이다.

여성패션 플랫폼 에이블리도 500억원 규모의 시리즈C 투자 유치를 검토했지만 시장 상황이 악화일로로 치닫자 자금 조달 규모를 축소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 투자자 중 한 곳에 따르면, 변경된 계획 안에는 기존 투자자들이 추가 자금을 일부 더 공급해주는 차원에서 시리즈C 투자 유치를 종료하는 것으로 계획되었다는 것이다.

메쉬코리아(부릉) 같은 최악의 상황은 피하자는 분위기

지난 5일, 배달서비스 ‘부릉’을 운영하는 메쉬코리아의 유정범 의장이 경영권 배제에 반발해 법원에 회생절차를 밟는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스타트업계 이곳저곳에서는 유정범 의장이 10년간 키운 회사를 투자자들에게 뺏겼다며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이어 5,000억원을 바라보던 왓챠가 200억원에 팔린다는 소식에 충격을 먹은 스타트업 관계자들도 많았다.

스타트업계 성공 스토리의 큰 축을 차지했던 회사들이 연이어 무너지면서, 스타트업계 관계자들은 최악의 상황만은 피하자는 분위기라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말이다. 특히, 예전에는 ‘일단 받고보자’였던 벤처투자에 대해 흑자전환에 성공한 스타트업들이 대부분 좀 더 지켜보자는 관망세로 돌아선 것으로 알려졌다.

투자금이 들어오고 나면 투자사의 목적에 맞게 투자금을 쏟아부어 단기 고도 성장을 노려야하나, 사업 구조 자체가 그런 목적에 맞추기에는 무리가 많다는 한 스타트업 관계자는, “예전에는 남들이 투자 받았다고하면 부럽고, 나는 왜 이러나 싶어 괴롭고 그랬는데, 요즘 사정을 보니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내 힘으로 매출액 만들어내서 천천히 성장하는게 진짜 승리라는 생각”이라며 더 이상 투자자를 만나러 돌아다니지 않고 자사 매출액 증진에 힘을 쓰게 됐다는 말을 전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