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한국 직장은 왜 직업 교육이 엉망인가?

필즈상 수상 허준이 교수에게 ‘첫사랑’ 질문 던진 한국인 국내 기업, 직원들의 역량 향상을 위한 노력 부재 다시는 중국인 기자에게 질문 차례 빼앗기는 일 없어야

160X600_GIAI_AIDSNote
허준이(39. June Huh)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 겸 한국 고등과학원(KIAS) 수학부 석학 교수가 7월 5일(현지 시간) 필즈상의 영예를 안았다/사진=과학기술정보통신부

“첫 번째 질문이 ‘첫사랑 이야기’였는데,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질문이라 약간 어버버하다가 적절치 못한 대답을 한 것 같기도 한데 지금은 제일 기억에 남네요.”

수학계에서 4년에 한 명씩, 그것도 40세 이전의 신진 수학자에게만 주어진다는 ‘필즈상’ 수상자 허준이 교수가 ‘가장 인상적인 질문을 소개해달라’는 요청에 한 말이다.

허준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 겸 한국 고등과학원 석학 교수의 세부 전공 분야는 사칙연산을 바탕으로 기하학적인 대상을 연구하는 조합 대수기하학으로, 조합론의 오래된 난제를 해결하고 대수기하학의 새 지평을 연 공로를 인정받아 필즈상을 수상했다. 허 교수가 해결했던 여러 난제 중 대표적인 것은 리드(Read) 추측과 호가(Hoggar) 추측이다. 일반적인 그래프의 채색다항식에 등장하는 계수들과 관련해 이 계수들이 ‘단봉 패턴’을 보인다는 가설이 리드 추측이며, ‘로그-오목성’을 가진다는 예상이 호가 추측이다. 그 이후에는 그래프를 일반화한 임의의 매트로이드에 대해서도 특성다항식의 계수들이 같은 로그-오목성을 만족한다는 훨씬 어려운 추측을 대수기하학에 등장하는 차우 링(Chow ring)의 조합적 정의 위에서 호지-리만 관계를 증명함으로써 규명했다.

수학계에서는 허준이 교수의 업적이 정보통신, 반도체 설계, 교통, 물류, 기계학습, 통계물리 등의 여러 응용 분야의 발달에도 적용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런 인류 역사상 1명 나오기 힘든 천재를 한국계 미국인, 한국의 서울대학교 출신이라는 이유로 좀 더 쉽게 인터뷰를 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첫 번째 질문이 ‘첫사랑 이야기’라는 것은 인터뷰를 준비한 관계자들이 얼마나 조악한 이해도를 갖고 있었는지 잘 보여주는 예시라고 할 수 있다.

해외 기업의 준비성

모 외국계 투자은행 IB팀의 한국 지사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관계자 A씨는 “국내 기업은 직장인의 역량을 길러주는 데 심각한 문제를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A씨는 당시 매일 밤을 새우는 일이 다반사인 데다 전 세계에서 하루 200개씩 메일을 받고 있어 정신없던 와중에, 국내 원자재 생산 업체의 재무팀 상무(CFO)가 학연을 이용해 A씨의 상사와 점심 약속을 요청했던 일화를 꺼냈다. 그는 “상사가 갑작스레 미팅을 잡자고 한 이유를 알아보라고 하시길래 바쁘다는 핑계로 ‘기사 검색해보니 별 거 없었다’고 답변했다가 국내 굴지의 상장사 CFO가 할 일이 없어서 나 같은 사람한테 점심 먹자고 급하게 연락이 왔겠냐? 고민 한 번 안 해보고 덥석 별 거 없다니 그러고도 월급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냐?라는 큰 꾸중을 들었다”고 밝혔다.

A씨는 “심한 꾸중을 듣고 급하게 해당 업체의 재무 자료와 업계 현황을 살핀 후 설비 시설에 최소 1,000억대의 자금이 투입되어야 하는 상황인데 업체의 영업현금흐름, 글로벌 원자재 가격 움직임 등의 이유로 국내 은행들에서 쉽게 대출받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닌 점을 정리한 보고서를 올리고, 점심 식사 중에 해외 사무실에서 원자재 업계의 자금 수혈 방안 등에 해당하는 자료를 받아 공유해드렸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A씨의 상사에게 점심 약속을 요청했던 해당 업체 상무는 ‘점심 먹자는 한 마디에 이만큼 준비한 걸 보면 역시 해외 기업들은 수준이 다르다’고 평했다고 한다.

한국인은 조사를 안 한다

반면 국내의 40~50인 규모 중소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대표 B씨는 “한국에서 기업미팅을 하면서 상대측이 회사 정보를 알아본 사례는 손에 꼽힐 정도”라고 밝혔다. 이어 “그간 벤처투자사(VC)들 수백 군데와 미팅했지만, B씨의 스타트업 홈페이지를 본 경우는 단 한 차례도 없었다”고 털어놨다. 더 놀라운 사실은 그간 면접자 300여 명 중에 회사 정보를 찾아보고 와서 적절한 대답을 내놓은 경우도 10건 남짓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B씨에게 위의 허준이 교수 일화를 공유하자 “아마 기자들에게 질문을 받았거나 어느 강연회 끝나고 일반 대중에게 질문을 받은 것 같은데 ‘증명하신 내용이 제 생활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요?’, ‘수학이 산업에 어떻게 쓰이는지 여쭤봐도 될까요?’와 같은 질문을 할 생각을 못 했을 것”이라며 “그 전에 아마도 허준이 교수가 무슨 상을 받았는지도 모르고 그냥 ‘유명한 상을 받았다’ 정도의 정보만 갖고 미팅장에 들어갔을 확률이 높다”고 답변했다.

이어 “기자 분들과 대화하면서도 회사에 대해 상세 자료 조사를 해 온 경우를 거의 못 봤다”면서 “미팅 중에 듣고 질문하면 충분하겠다고 생각하시는 건지, 아니면 아예 준비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시는 건지 몰라도 뭔가 무시당한다는 생각에 빨리 미팅을 끝내고 싶은 경우가 많다”는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2010년 G20 정상회의 때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한국 기자들에게 질문을 요청했지만 질문자가 없어 질문권은 중국 기자에게 넘어갔다/사진=EBS ‘다큐 프라임’ 발췌
2010년 G20 정상회의 때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한국 기자들에게 질문을 요청했지만 질문자가 없어 질문권은 중국 기자에게 넘어갔다/사진=EBS ‘다큐 프라임’ 발췌

허준이 교수가 해외에서 받는 질문들

인류 역사의 2,500년 난제 중 하나인 소수(Prime number)의 무한 존재를 증명한 장이탕 뉴햄프셔대 교수의 하버드 대학 1일 강연을 들은 보스턴 지역 대학 박사 출신 관계자의 증언에 따르면 장이탕 교수의 강의가 끝나고 난 다음 첫 질문이 ‘소수의 무한성이 증명되며 암호학 체계가 바뀌고, 암호업계에 큰 변화가 있을 것 같은데 자신의 증명이 어떻게 쓰일지 예측하거나, 예측된다면 어떤 감정인지 물어보고 싶다’였다고 한다.

인류 역사를 바꿀만한 기여를 한 유명 수학자를 불러다 놓고 그분의 도전에 대한 경외를 표하거나 사고의 흐름을 따라가려는 시도는 어디 가고, 그저 신변잡기나 가십에 불과한 ‘첫사랑’ 질문밖에 못 하는 것이 ‘한국에서 흔히 보는 질문 수준’이라는 표현도 뒤따랐다.

허준이 교수에 대해 인터뷰를 했던 기자가 만약 외국계 투자은행 IB팀 수준의 준비를 시키는 상사 밑에 있었다면 어떤 질문을 준비했을까? 그런 질문을 하는 훈련을 받았다면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한국 기자들에게 질문을 받고 싶다고 기다리고 있을 때 중국인 기자에게 질문 차례를 빼앗기는 일이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