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데이터] 론스타, 상처 뿐인 영광과 원죄(原罪)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에 6조원대 손해배상 청구소송 낸 론스타 10년간 이어진 소송의 끝은 한국 정부의 2,900억원 배상 책임 외환은행 매각은 정치인과 관료의 이기적인 선택에 대한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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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론스타

지난달 31일 무려 10년을 끌어온 ‘론스타(Lone Star) 소송’이 일단락됐다.

론스타 소송 사건은 IMF 이후 경영위기에 처한 외환은행을 2003년 1조3,800억원에 매입한 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가 2007년 HSBC에 5조9,000억원에 매각 계약을 맺은 뒤 불발되면서 발생한 분쟁이다. 론스타는 금융 비용을 포함, 최대 10조원의 차익이 가능했으나 한국 정부가 외환은행 매각 승인을 지연시켜 손해를 입었다며 2012년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에 6조원대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10년을 끌어온 이번 판결은 한국 정부의 2,900억원 손해배상 책임으로 결론이 난 모양새다. 이미 ‘먹튀’ 논란이 많았던 만큼 ‘한 푼도 더 줄 수 없다’는 국민 여론도 있으나, 증권가에서는 대체로 ‘이 정도면 선방했다’는 분위기다.

앞서 언급했듯 국민 여론은 론스타가 이미 2012년 하나은행에 매각 당시 4조7,000억원의 차익을 남긴 만큼, 추가적인 손해배상까지 해 줘야 한다는 것이 불만이라는 분위기지만, 론스타도 할 말은 많다.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하던 2003년의 한국 경제는 ‘IMF 구제금융’이라는 대형 금융위기를 막 탈출한 상태였고, 외환은행은 일시적인 유동성 위기 정도가 아니라 IMF 구제금융 당시 쌓인 부실채권으로 망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카드 사태로 인한 개인 부실이 은행에 전이된 데다 현대건설과 하이닉스의 부실까지 외환은행이 오롯이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IMF 구제금융 초기였던 1998년 5월 독일 코메르츠방크에서 지분 29.79% 투자받으며 급한 불은 껐으나, 현대건설과 하이닉스의 합계 부실이 수십조에 달했던 만큼, 외환은행은 생존 자체에 대한 의구심에 대응해야 했던 시점이었다. 심지어 당시 정부는 공적자금을 위한 추가 채권 발행까지도 중단하겠다고 선언한 상태였다. 즉 론스타는 ‘독박’을 쓰는 위험을 부담한 것이다.

지난 7일간 ‘론스타’ 연관 키워드 네트워크/출처=㈜파비 데이터 사이언스 연구소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실책

위 빅데이터 여론 분석 차트 좌측의 붉은색 키워드 그룹은 ‘정권의 무능’이라는 키워드로 요약할 수 있다. 사후 책임 소지를 따지는 것이 우습기는 하지만, 당시 김대중·노무현 정권은 외환은행 붕괴가 낳을 파장에 대해 명확한 인식이 부족한 상태였다. 100조원 이상의 공적자금을 투입해 여러 기업을 살리던 와중에 ‘고통분담 실패’, ‘정권에 우호적인 기업만 구제’ 등의 여론에 밀려 추가 공적자금 투입은 없다고 선언했던 탓에 기업 채권이 빠르게 부실화됐고, 공적자금이 투입되지 않은 은행들은 ‘폐업행’ 고속열차에 앉은 상황이었다. 국내 5대 은행 중 하나였던 외환은행 붕괴가 결정되는 순간, ‘IMF 구제금융 졸업’이라는 정치적 선언을 바로 포기해야 할지도 모르는 심각한 국면이었음에도 ‘공적자금 추가 투입은 없다’는 선언에만 집착했다.

공적자금 투입이 없는 한 외환은행의 붕괴는 불을 보듯 뻔한 사실이었고, 아직 경제 체력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나라의 대형은행 붕괴는 ‘IMF 2탄’으로 돌아온다는 금융계의 우려에도 정치적인 고집만 강행했던 탓에 결국 외환은행은 외국인의 손에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김대중 정권 아래 2002년 여름부터 시작된 외환은행 매각 절차는 정권이 바뀐 2003년 8월 론스타가 외환은행 지분의 51%를 1조3,834억원에 인수하며 마무리됐다.

사진=네이버 뉴스 댓글 캡처

2,900억원 배상은 결국 국민 세금 아닌가?

만약 당시 1조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되었다면 론스타가 외환은행 매각으로 얻었던 4조7,000억원의 차익은 국민의 손으로 돌아올 수 있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10년간의 소송도, 2,900억원이라는 추가 배상도 없지 않았을까?

결국 론스타는 여러 차례 매각 시도를 하던 와중, 한국 정부에 방해를 받았다는 이유로 2,900억원의 추가 배상을 받게 됐다. 한국 정부의 방해라고 인정되는 사안 중 하나는 2007년부터 2008년까지 2년간 진행됐던 영국 HSBC의 인수 포기 선언이다. 당시 론스타는 투자자들로부터 엄청난 투자금 회수 압박을 받고 있었던 탓에 하루빨리 한국 시장을 떠나고 싶어 했다. 그러나 ‘먹튀’라는 강한 비난 여론이 국내에 조성되고 있었던 데다, 온라인에서는 외환은행 고객들의 탈출 러시까지 대대적으로 나타나는 등 곤혹스러운 처지에 빠지게 됐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2006년 국민은행의 외환은행 인수 시도도 들 수 있다. 국제 외환 시스템에 등록된 유일한 국내 은행이 하나로 합쳐지는 것에 문제가 있다는 ‘K-공무원의 갑질’까지 감당하며 매각을 진행했으나, 결국 론스타는 국민은행에서 HSBC로 우선협상대상자를 바꾼 사례도 있다. 2003년 매각이 헐값에 이뤄진 것도 사실이지만, 론스타가 국내에서 정부 및 국민 여론으로부터 엄청난 압박을 겪었다는 사실 또한 분명해 보인다. 2,900억원이라는 손해배상이 나올 수 있었던 배경이다.

헐값이어서 매각됐었다?

론스타가 ‘Exit'(매각을 통한 투자금 회수)을 못하고 한국 시장과 정부에 끌려다니는 것을 본 많은 해외 투자자들은 더 이상 한국을 매력적인 투자처로 보지 않게 됐다. 투자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한국은 ‘발목 잡히는 곳’이라는 이미지가 강하게 잡혀있어, 웬만큼 매력적인 저가 매수 기회가 아니라면 선뜻 한국 시장에 진입하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특히 “여론의 주목을 받을 수 있는 외환은행과 같은 기업은 선택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헐값 매각 논란의 배경을 살펴보면 증권가에서 기업가치 평가에 흔히 쓰는 주가배수비율(P/E)이나 금융기관 평가에 주로 쓰는 장부 대비 주가비율(P/B) 대신 미래 배당금에 대한 현재가치할인법이라는 단순 자산 평가법을 적용한 것이 주원인으로 꼽힌다. 보통 영업권의 가치를 따져야 하는 대형 기관에는 흔히 쓰지 않는 계산법인데다, 금융위기를 겪은 탓에 장기간 배당액이 축소되었던 과거 자료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론스타가 매력적인 투자처로 인식할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해당 계산법을 썼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이에 이름을 밝히지 않은 당시 경제관료는 “정권이 공적자금 포기라는 선택을 하고 있던 시점에 2차 금융위기를 우려한 관계자들에게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변명했다.

사진=네이버 뉴스 댓글 캡처

빅데이터 네트워크 차트의 좌측 붉은색 키워드에 등장하는 현 정부 경제부처 주요 인사들이 언급된 인터넷 여론을 보면 당시 경제관료들이 정권과 ‘야합’했었던 부분을 지적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에게 남긴 숙제

정치인과 관료의 셈법은 다르다. 정권 재창출을 위해 굳이 무리한 정치적 선택을 하지 않았던 집권당과 그 집권당의 흠집 잡기에 바빴을 야당, 그리고 인사권을 쥐고 있는 집권당 관계자들의 고민을 충실히 따라야 했던 관료들의 각기 다른 이기적인 선택이 4조7,000억원의 ‘먹튀’, 2,900억원의 ‘배상’, 나아가 한국은 해외 투자자가 ‘발목 잡히는 곳’이라는 이미지를 남기게 했다. 이기적인 선택을 했던 그들은 여전히 엘리트 정치인과 엘리트 관료로 대접받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국민 세금 5조원만큼의 기회비용 손실을 봤으며, 어리석은 선택으로 이미지만 망가졌다. 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