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데이터] 투자 혹한기 맞아 대기업으로 되돌아가는 인력

대기업→스타트업에서 다시 대기업으로 유턴 스타트업계 투자 위축으로 안정적인 대기업 다시 선호 현상 빅데이터상으로도 대기업 관심 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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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대기업→스타트업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국내 10대 그룹의 주요 계열사인 A사에서 작년 연말부터 사원, 대리, 과장, 차장급 직원 6명이 줄줄이 퇴사해 사내에서 파장이 일었다. 팀 내 20명 중 무려 30%가 그만둔 것으로, 퇴사자들은 다른 대기업이나 스타트업으로 각각 옮겨갔다.

당시 대기업에선 “인력이동이 너무 빈번해져 인사팀 업무가 폭증하고 있다”는 말까지 나왔다. 직장인들 사이에서 ‘평생직장’ 개념이 사라지고 ‘몸값 우선’ 문화가 확산하면서, 인력 대이동이 뉴노멀(new normal, 새로운 표준)이 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일명 ‘네카라쿠배’로 불리는 네이버, 카카오, 라인, 쿠팡, 배달의민족이 인재들을 무섭게 빨아들이면서 인력 대이동은 전방위로 확산되고 있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LG전자 같은 국내 대표 기업 CEO들조차 “우리의 적은 네카라쿠배”라고 토로할 정도였다.

불황으로 다시 대기업으로 돌아오는 인력

하지만 최근 스타트업 투자시장이 ‘혹한기’에 접어들면서 상황은 변했다. 불과 지난해까지만 하더라도 전례 없는 호황을 누리며 수많은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 스타트업)을 배출시켰던 스타트업 투자시장에 거센 투자 한파가 불어닥치고 있는 것이다.

절체절명의 위기였던 코로나19가 주춤해지자 세계 각국이 양적 완화 정책을 거둬들이며 유동성 잔치가 끝나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인한 글로벌 공급망 위기는 실물경제에 악영향을 미치며 글로벌 인플레이션을 부추겼다. 그리고 그 파장이 금융시장에도 일어나며 스타트업들은 기업공개(IPO) 일정을 연기 또는 철회하고 투자자들은 회수율 불확실성 증가로 인해 소극적 투자전략으로 전환하는 등 투자시장이 얼어붙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혹한기’가 다가오며 다시 인력 대이동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투자유치 불발에 지분 매각 및 인원 감축에 들어간 스타트업들이 많아진 데 따른 현상이다. 스타트업 투자 호황기에 몸값이 치솟던 개발자 연봉도 하반기부터는 조정될 가능성이 커졌다.

자율주행 스타트업 포티투닷은 최대주주인 송창현 대표의 지분 약 36.19%를 포함한 기존 주주들이 보유한 지분 대부분을 현대자동차그룹에 매각하는 방안을 진행 중이다. 매년 수천억원 규모로 예상되는 추가 투자금을 단독으로 감당하기보다 현대차그룹 계열사로 편입돼 사업 규모를 키우는 것이 적합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스타트업간 인력이동이 불가피해졌다는 분석이다. 통상 경영권 매각 후 PMI(인수 후 통합작업) 과정에서 인력 감축이 수반될 가능성이 크다. 더욱이 현재와 같이 녹록지 않은 투자환경 속에서는 비용 절감을 위한 일부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꼭 경영권 매각 수순을 밟지 않더라도 선제적인 인원 감축 및 구조조정을 고려하는 곳도 생겨나고 있다. 개인 오디오 방송 플랫폼 ‘스푼’을 운영하는 스푼라디오는 지난해 말부터 직원 수가 약 30% 이상 감소했다. 부동산 중개 스타트업 집토스 역시 인원 감축을 통해 긴축 경영 체제에 돌입하고 있다. 왓챠 역시 경영권 매각과는 별개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으며 사실상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있다.

이에 개별 스타트업의 자금 여력에 따라 인력 확보 측면에서 ‘양극화 현상’이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그나마 올해 상반기까지 대규모 투자금을 유치해둔 기업들은 필요한 인력을 영입할 기회를 맞겠지만, 그렇지 못한 회사들은 유능한 인재를 내보낼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는 의미다.

개발자들 사이에서 U턴 현상 두드러져 

그간 ‘억대 연봉’으로 각광 받던 개발자들의 평균 연봉은 다소 조정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카카오나 네이버 등 국내 탑티어(Top-tier) IT 회사들이 수익성 부담으로 인해 이전처럼 고액 연봉의 개발자를 대거 채용하기가 어려워질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자연히 중상위급 스타트업 개발자들이 더 높은 몸값을 받으며 이직하는 사례들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IT 업계 관계자는 “지금은 개발자들이 초기 스타트업에서 대박을 노리기에는 너무 위험한 시기”라면서 “안정성과 새로운 도전 모두를 챙길 수 있는 대기업이 새로운 선택지로 떠오르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스타트업에서 대기업으로 유턴하는 개발자가 늘어나는 추세다. 본지가 개발자 채용 플랫폼 ‘그렙’과 회사 규모별 개발자 채용 공고를 분석한 결과, 올해 상반기 스타트업 개발자 채용 공고는 불과 26.4% 늘어났지만, 대기업 개발자 채용 공고는 약 20배인 438% 늘었다. 헤드헌팅 업계 관계자는 “최근 경제면으로 궁핍해진 스타트업들에서 팀 단위로 탈출하려고 하는 개발자들이 많다”며 “그동안 개발자 채용에 전전긍긍했던 대기업들이 기회를 잡은 셈이다”고 했다. 최근 경영난에 빠진 국내 OTT 업체에서 통신 대기업으로 이직한 4년 차 개발자 A씨는 “스타트업이 어려워지는 상황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지만, 지금은 한 스타트업 뿐만 아니라 업계 전체가 불황기에 있다”며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안정성을 우선시하려는 때 제의가 들어와서 받아들였다”고 했다.

대기업들이 사내 벤처기업을 적극 육성하는 것도 이번 개발자 U턴 현상에 영향을 크게 준 듯하다. 실제로 삼성, LG, 현대차, GS, 한화, 코오롱, 효성 등 대기업들은 사내 벤처 형식으로 메타버스, 블록체인, 모빌리티 등 신사업에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반면 궁핍해진 스타트업들은 월 수천만~수억원에 달하는 강남 테헤란로 임대료를 견디지 못하고 하나둘 빠져나가고 있다. 한 스타트업 관계자는 “강남의 비싼 임대료를 지불하느라 월급을 제대로 지급하기 어려운 스타트업들이 적지 않다”고 했다.

OTT 스타트업 왓챠는 최근 본사를 강남역에서 다른 곳으로 옮기고 사무실 규모 또한 줄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재능 공유 플랫폼 B사는 최근 100명 가까운 직원을 절반 넘게 줄이고 본사를 강남에서 성수동으로 옮겼다.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배달 대행 플랫폼 ‘부릉’ 운영사 메쉬코리아도 연말까지 본사를 경북 김천시로 옮긴다고 밝혔다.

빅데이터로 보는 U턴 현상

키워드 ‘대기업’ ‘스타트업’ 언급량 기간별 추이/사진=파비 데이터 사이언스 연구소

실제로 스타트업에 대한 관심은 식어가고 있는 반면, 대기업에 대한 관심은 뜨거워지고 있다. 파비 데이터 사이언스 연구소에서 독자적으로 스타트업과 대기업에 대한 일주일간 인터넷상 언급량을 조사해본 결과, 대기업 언급량이 스타트업 언급량을 항상 웃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기업과 스타트업 언급량 차이 폭이 가장 컸던 날은 7월 15일로, 대기업 언급량은 약 1억4천만 건인 것에 비해, 스타트업 언급량은 약 11만 건에 그쳤다. 수치로 계산하면 약 1억3,989건의 차이, 배수로 계산하면 약 1,272배 차이가 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키워드 ‘대기업’ ‘스타트업’ 채널 카테고리별 언급량/사진=파비 데이터 사이언스 연구소

이러한 언급량은 언론 매체인 뉴스보다 직장인에게 있어 접근성이 좋고 장벽이 낮아 의견을 쉽게 표출할 수 있는 매체인 커뮤니티에서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커뮤니티에서의 언급량은 약 41억 건으로, 뉴스 언급량 약 8억 건의 5배 이상의 수치를 기록했다. 이는 직장인들 사이에서 대기업에 대한 관심은 뜨겁고, 스타트업에 대한 관심은 식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자료라 할 수 있다. 온라인 카페(언급량 약 2억 건), 유튜브(언급량 약 5천만 건)에서의 언급량이 그 뒤를 이었다.

키워드 ‘대기업’ 긍부정 비중/사진=파비 데이터 사이언스 연구소
키워드 ‘스타트업’ 긍부정 비중/사진=파비 데이터 사이언스 연구소

긍부정 평가에서도 직장인들이 대기업을 더 선호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대기업에 대한 인터넷상 언급량을 토대로 긍부정 평가를 조사해본 결과, 긍정 평가가 55.82%로 부정 평가 44.18%를 상회하며 과반을 차지했다. 즉, 절반 이상의 직장인들이 대기업의 안정성을 더 선호한다는 것이다. 그에 비해, 스타트업에 대한 인터넷상 언급량을 토대로 긍부정 평가를 조사해본 결과, 부정 평가가 60.09%로 긍정 평가 39.91%를 약 2배 가까이 상회하며 과반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직장인의 약 3분의 2가 스타트업 전망을 어둡게 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키워드 ‘스타트업’ 관련 키워드 네트워크/사진=파비 데이터 사이언스 연구소

이어, 스타트업과 관련된 키워드를 네트워크 그림으로 정리해본 결과, ‘하락’ ‘우려’ ‘비상’ ‘감소’와 같은 부정적인 키워드가 다수 등장했다. ‘우려’와 ‘비상’은 투자 ‘혹한기’를 거치고 있는 스타트업 업계를 향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락’은 ‘감소’한 투자로 인한 자본, 자금 금액의 ‘하락’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스타트업의 위기 상황에 대한 대비책은 한 가지로 좁혀진다. 바로 ‘성장’보다는 ‘생존’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불필요한 낭비를 줄여 새로운 기회에 투자하고 수익을 올려 ‘런웨이(runway, 생존기간)’ 연장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러한 이유로 전 세계 스타트업의 구조조정이 현실화되고, 빠르게 성장하는 스케일업(scale-up) 전략에서 당장의 수익성 확보로 전략을 급선회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늘 그렇듯 위기와 기회는 공존하기 마련이다. 급격히 변화하는 투자환경에 맞춰 기술력과 성장성을 갖춘 스타트업들이 혹한기 속 한파를 뚫고 나갈 수 있도록, 스타트업 생태계의 전략적 변화와 함께 정책적 지원을 다시금 정비해야 할 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