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계 장학금 받고 ‘의대’로 먹튀, 5년간 환수 결정 546명

이공계 지원 장학금, 1인당 550만원 꼴, 1학기 등록금 수준 명목 뿐인 금액에 학생들 의대로 발길 돌리는 것 못 잡아 이공계 처우 개선 위해 형평성보다 효율성 고려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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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공계 장학금을 받아놓고 의대 등으로 진로를 변경한 학생이 최근 5년간 무려 546명이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의대로 전공을 변경한 인원은 지난해 52.9%였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정필모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26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연구장려급 환수가 결정된 인원은 546명이다. 특히 장학금 환수 대상자 중 법적기한인 90일 이내 상환 약정을 하지 않은 장기미납자 숫자도 매년 증가하고 있어 장학금 무용론마저 제기되는 상황이다.

사진=TheSavvyPre-Med

이공계 연구장려금, 의대 선호 앞에 속절없이 무너져

과기정통부의 ‘최근 5년간 연구장려금 지급과 환수 결정 현황’ 자료에 따르면, 연간 수혜자는 10만5,669명으로 이들에게 지급된 금액은 총 5,598억원에 달했다. 1인당 평균 약 530만원이 지급된 셈이다. 그러나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이공계 외 진로 선택으로 연구장려금을 환수하게 된 인원은 총 546명이다. 이 중 111명은 이공계 외로 전공을 변경했고, 435명은 이공계열 산학연에 종사하지 않아 최종적으로 환수가 결정됐다.

전공 변경자들 중 의대 진학자 숫자는 절반에 육박한다. 2018년 33.3%에서 2020년 51.5%, 2022년에는 52.9%까지 치솟았다. 의대 진학과 더불어 환수가 결정된 대상자 중 90일 이내 상환약정을 하지 않은 장기미납자 숫자도 증가 추세다. 2019년 10명에서 2022년 25명으로 증가했고, 미납액도 지난해 2억4,400만원까지 증가한 상황이다.

정 의원은 “이공계 지원 장학금을 받고도 의대 등 다른 진로를 선택하는 것은 정작 지원이 필요한 이공계 학생들의 기회를 뺏는 것”이라며 “과기정통부는 이공계 지원 장학금을 ‘먹튀’한 사람에게 철저히 환수 조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의대 쏠림 심화, 단순한 연구 지원금으로 막는 것 불가능

교육계 전문가들은 의사가 됐을 때와 이공계 연구직이 받을 수 있는 기본적인 수당의 차이가 매우 큰 만큼, 현실적으로 1인 평균 500만원 내외의 지원금이 학생들의 이공계 지원을 유도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지난 5월 메가스터디교육이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최종 목표로 하는 대학 전공을 묻는 질문에 초등학생의 23.9%가 ‘의학계열’로 답했다. 중학생을 대상으로 한 같은 설문조사에서도 20.2%가 의학계열을 지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국가의 미래 산업 인재로 자라나는 데 필수 전공인 자연과학계열 및 공학계열은 각각 18.7%, 15.5%에 불과했다. 이미 초등학교에서부터 이공계 선호가 크게 낮은 상황인 것이다.

대학에서 생명공학을 전공하고 있는 A씨는 의학계열이 문과 대부분의 전공에 비해 학비가 2배 이상의 고가임에도 불구하고 학생들 사이에서 ‘가성비’로 인정받는 이유를 ‘졸업 후 확실한 직장 및 라이선스’라고 답했다. 로스쿨과 더불어 의학계열은 졸업과 동시에 국가 자격 시험을 치르면서 전문성을 국가로부터 인증받는 ‘타이틀’을 바로 확보할 수 있고, 이는 곧 금전적인 이득으로 바로 돌아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연구장려금, 본래 취지 살릴 수 없다면 다른 방안 찾아야

연구장려금은 우수한 이공계 인력양성을 목적으로 한국장학재단을 통해 장학금을 지급하는 국가과학기술 장학사업이다. 하지만 수년간 이공계 이탈 현상이 가속함에 따라 정부는 2011년 ‘연구장려금 환수조항’을 마련했다. 장학금 혜택만 받고 이공계 외 진로 선택을 방지하겠다는 목적이었다. 그러나 대학 1학기 등록금 정도에 불과한 금액으로 학생들의 전공 변경을 막기는 역부족이라는 것이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교육계 관계자들은 이공계 졸업자가 금전적으로 눈에 띄는 이득을 볼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내기 위해 연구 자금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연구장려금의 본래 취지를 살릴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이어 대학, 전공, 교수진 및 학생들에 따라 연구 성과가 크게 다른데도 불구하고 정치적인 이유로 고른 분배가 이뤄지고 있는 점도 효율성 저하의 원인으로 작용한다고 지적했다. 이공계 학생 중 성과가 뛰어난 학생은 더 많은 연구 지원금을 받을 수 있도록 효율적인 지원 체계가 구축될 경우에 지금보다 의대로 이탈하는 비율을 크게 낮출 수 있다는 것이다.

관계자들은 학생들의 ‘장학금 먹튀’를 지적할 것이 아니라, 전공별 수익 구조가 왜곡된 현재 상황을 개선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