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데이터] 환율 문제, 일본과 한국의 다른 대응
엔·달러 환율 상승 막기 위해 개입한 일본 정부 日 정부 개입에 단 20분만에 146엔에서 142엔까지 하락 원·달러 환율은 연초 1,429원까지 급상승, 환율 방어 실패
일본 정부가 24년 만에 환율에 개입했다. 위 영상은 9월 23일 달러당 146엔대를 오르내리다가 정부 개입이 들어가자 순식간에 142엔대까지 폭락하는 모습이다. 이는 엔·달러 환율이 150엔까지 치솟을지 모른다는 우려가 계속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원·달러 환율이 올 초 1,188원이었다가 1,429원까지 치솟은 한국 환율 시장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증권업계의 속설로 ‘강호의 고수도 관군은 이길 수 없다’는 표현이 있다. 외환시장에서 아무리 뛰어난 트레이더라도 해도 정부가 개입하게 되면 시장 흐름을 읽는다는 것이 무의미해진다는 표현이다.
외환업계 관계자는 “일본 정부는 전형적인 정부 개입 스타일로 이른바 ‘호가를 잡아먹는 방식’으로 효과적인 시장 개입에 성공했지만, 한국은 사실상 개입에 실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 재무부에 따르면 한국 정부가 보유한 미 재무부 채권이 올 초부터 지난 7월까지 무려 189억 달러 이상 줄어들었던 부분이나 최근 국민연금과 100억 달러 규모의 통화스와프 계약을 체결한 부분 등이 한국 정부의 대응이라고 볼 수 있으나, 여전히 원·달러 환율 상승을 막지는 못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전문가들은 한국과 일본이 글로벌 시장 내 체급이 다른 만큼, 좀 더 역량을 모아 총체적인 대응을 하는 수밖에 없다는 반응을 내놨다. 달러 부족이 가시화될 때마다 공론화되는 국내 기업의 해외 자산이 그 도구의 예시다. 25일 매일경제는 한국 기업의 해외법인 유보금이 지난해까지 총 902억 달러(약 128조원)에 이른다고 보도했다. 국민연금과 100억 달러 규모의 통화스와프만으로 부족하다면 해외법인 유보금의 일부를 한국으로 들여오는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회계감사 기관 및 컨설팅 업체인 프라이스워터스쿠퍼스(PwC)와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OECD 국가 중 칠레, 콜롬비아, 멕시코, 이스라엘, 아일랜드 및 한국을 제외한 32개국은 해외 배당소득에 대해 비과세지만, 배당소득이 과세대상일 경우 국내 재배당을 위한 유인 동기가 떨어진다고 분석했다. 해외에서 이미 배당소득에 대한 과세가 이뤄졌기 때문에 국내에서 재배당에 다시 세금을 부과할 경우 이중과세가 발생하게 되어 국내 기업들이 국내 재배당을 시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연구 보고서는 2018년 해외 배당소득 과세 방식을 비과세로 바꾼 이후 미국의 다국적기업이 보유했던 1조 달러의 해외 유보금 가운데 7,770억 달러(78%)가 역내로 되돌아왔다는 보고서를 내기도 했다. 2009년 배당소득을 비과세로 전환한 일본 역시 95%의 기업 해외 유보금이 일본 시장으로 되돌아왔다.
외환 전문가들은 미국, 일본보다 더 적극적으로 외환의 국내 복귀를 지원했어야 할 정부가 환율 비상사태가 벌어질 때까지 태무심하고 있었던 것은 정부의 실책이라고 입을 모은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902억 달러 가운데 20~30%만이라도 국내에 환원될 경우 지금보다 훨씬 더 효율적으로 외환시장 개입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 정부가 올 1분기 원·달러 환율 방어를 위해 83억1,100만 달러라는, 역대 최대 규모의 외화보유액을 쏟아부었다는 것은 업계에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외화 현금 자산의 30%만 국내 환원돼도 1분기 투입액의 4배 이상이 국내 시장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최근 들어 자칫 1997년 IMF 구제금융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금모으기 운동’을 벌였던 시절처럼 국민 모두가 나서야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경제 체급이 훨씬 더 커진 국가 역량에도 불구하고 빠른 속도로 일어나는 환율 상승을 방어하지 못했다는 비난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대응이 절실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