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데이터] 경매로 넘어가는 아파트, 깡통전세의 공포
인천시 미추홀구에서만 200세대 이상 피해 온라인상 ‘아파트 경매’ 검색량 급증 국토부, 전세사기 의심 거래 경찰청에 자료 제공
집값은 내려가는데 금리가 오르면서 집주인들이 대출을 못 갚아 집이 경매로 넘어가는 사례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인천시 미추홀구 오피스텔형 아파트에 사는 30대 정 씨는 22일 “입주 4개월 만에 건물주의 채무로 전셋집이 경매에 넘어갔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토로했다.
깡통전세 피해 속출, 인천시 미추홀구 200세대 이상 경매로 넘어가
정 씨는 올해 1월 서울에서 인천으로 직장을 옮기면서 급히 9천만원을 주고 전셋집을 구해 지난 3월께 입주했다. 계약 당시 1억4천만원 상당의 근저당권이 잡혀 있었으나, 7년간 사고가 없던 안전한 매물이라는 부동산 중개업자의 말에 안심한 게 화근이었다. 그는 “부동산 중개업소에서는 매물 시세와 비교해 보증금이 적으니 안전하다고 강조했다”며 “손해를 보면 책임을 지겠다는 얘기도 했다”고 토로했다.
정 씨가 사는 아파트는 모두 2개 동 112세대 규모로, 현재 건물 전체가 법원 경매에 넘어간 상태다. 이 아파트에 입주한 대부분 세대가 임차인으로 구성돼 있어 피해가 잇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 임차인은 선순위 근저당 설정으로 4천300만원 상당의 최우선 변제금만 보장받고 나머지 전세금을 떼일 처지에 놓였다.
정 씨는 “이대로 경매가 진행되면 세입자들은 4천만∼5천만원 이상의 손해가 예정돼 있다”며 “임대인은 전화를 받지 않고 부동산 중개업소 측은 임대인이 채무 변제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고 울분을 토했다.
대다수 세입자는 계약 전 가구에 근저당권이 설정된 것을 걱정했으나, 전세난이 심각해 입주를 선택했다. 한 세입자는 “매물이 없다 보니 이곳저곳 헤매다가 어쩔 수 없이 들어온 사람도 많다”고 했다. 건물주와 공인중개사들이 계획적으로 이들 세입자의 보증금을 노렸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4∼5곳의 공인중개소가 해당 아파트 전세 매물을 적극적으로 소개한 뒤 경매에 넘어간 직후 영업을 중단했다는 것이다.
인천 미추홀구의 또 다른 한 아파트, 14층 한 동짜리 C 아파트에서는 65세대 중 55세대, 전체의 84%가 경매로 넘어갔다. 이 아파트의 20대 전세 세입자 이 씨의 집 역시 지난주 경매에 넘어갔다. 이웃집들이 줄줄이 경매로 넘어가는 걸 보고 등기를 떼보니, 경매 개시 사실이 적혀있었다.
이 씨는 “불안해서 거의 매일 같이 등기부 등본을 열어봤다. 그랬더니 7월 27일 자로 처음 개시 결정이 난 것을 파악했다”고 했다. 올해 초부터 일부 세대가 경매로 넘어가기 시작했는데, 집주인은 모두 김 씨 한 사람으로 동일했다. 또 다른 피해 세입자는 “엘리베이터에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임대인이 김 씨라고 돼 있는 분들은 자기(이 씨)한테 연락을 달라고 해서 알아보니까 전부 다 같은 임대인이었다”고 토로했다. C 아파트의 전세계약을 맡았던 공인중개사는 근저당권에 대한 별도의 문구까지 적어가며 세입자들을 안심시켰다. 또한, 집주인 김 씨도 “금리 인상으로 이자가 연체돼 생긴 일”이라며, “임차인들에게 손해가 안 가게 하겠다”고 세입자들에게 설명했다.
이처럼 미추홀구에서는 깡통전세로 전락해 경매에 넘어간 아파트가 잇따르고 있다. C 아파트 외에도 A 아파트와 B 아파트에서도 각각 72세대와 33세대가 경매로 넘겨졌다. 여기에 40여 세대가 남겨진 D 아파트까지 더하면, 미추홀구에서만 아파트 4곳, 최소 200세대가 최근 경매로 넘어간 것으로 나타났다. 전세 보증금이 걸려 있는 세입자들은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아파트 경매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 역시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파비 데이터 사이언스 연구소에서 독자적으로 아파트 경매에 대한 최근 한 달간 인터넷상 언급량을 조사해본 결과, 모든 날에서 높은 언급량을 보여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언급량이 많았던 날은 8월 10일로, 무려 약 9억4천만 건에 달했다. 이는 언급량이 급상승하기 시작한 8월 8일 언급량 약 1억 건과 비교했을 때 9.4배 증가한 수치이며 가장 최근인 8월 24일에도 언급량이 1억 건을 넘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관심은 언론 매체인 뉴스보다 편리한 접근성과 낮은 장벽으로 비교적 의견을 쉽게 표출할 수 있는 매체인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더 두드러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채널 카테고리별로 아파트 경매에 대한 인터넷상 언급량을 조사해본 결과, 커뮤니티에서의 언급량은 약 165억 건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뉴스에서의 언급량이 약 17억 건인 것을 고려하면 9배 많은 수치로 언론보다는 실제 이해 당사자가 될 가능성이 큰 국민들이 아파트 경매에 더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한편, 인터넷 카페에서의 언급량은 약 29억 건으로 2위를 차지했고, 유튜브에서의 언급량은 약 2억 건으로 가장 낮았다.
세입자들의 한숨은 인터넷 여론에도 크게 반영됐다. 아파트 경매에 대한 인터넷상 언급량을 토대로 긍부정 평가를 조사해본 결과, 부정 평가가 60.57%로 긍정 평가 39.43%를 웃돌며 과반수를 차지했다. 기간별로 긍부정 평가를 살펴보았을 때, 지난 한 달 내내 부정 평가가 긍정 평가를 웃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정 평가가 가장 높았던 날은 언급량이 가장 많았던 날과 같은 8월 10일로 약 150억 건에 달했다. 또한, 이날은 부정 평가와 긍정 평가의 차이 폭이 가장 심한 날이기도 했으며 긍정 평가가 약 50억 건으로 그 차이는 무려 100억 건에 달했다.
아파트 경매에 대한 관심 급증
아울러, 경매와 관련돼서 언급된 키워드를 네트워크 차트로 정리한 결과, 키워드 ‘경매’와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는 키워드로 ‘전세’와 ‘대출’이 등장했다. ‘경매’ ‘대출’ ‘지역’ ‘가격’ ‘시장’ 등의 하늘색 키워드 그룹은 ‘경매’ 키워드 그룹이라 해석된다. 이어 ‘부동산’ ‘주택’ ‘전세’ ‘아파트’ ‘문제’ 등의 빨간색 키워드 그룹은 ‘전세’ 키워드 그룹이라 해석된다. 마지막으로 ‘방법’ ‘피해’ ‘금리’ ‘상승’ ‘은행’ 등의 초록색 키워드 그룹은 ‘대출’ 키워드 그룹이라 해석된다.
세 키워드의 그룹들은 각각 나열된 형태로 서로 붙어있으며, 이는 ‘경매’를 중심으로 키워드 그룹들이 밀접한 관련성을 가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아파트가 경매로 넘어간 가장 큰 원인은 대출을 갚거나 전셋값을 돌려주기 위함에 있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경매로 넘어갈 집으로 전세계약을 맺는 등 사기 행위가 이곳저곳에서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수도권 아파트 한 동을 통째로 소유한 임대인 김 씨는 담보대출 연체로 주택 전체가 경매에 넘어가게 됐다. 하지만 그는 공인중개사와 말을 맞춰 이 사실을 숨기고 임차인 30여 명과 전세계약을 맺었다. 경매가 시작되면서 이들 임차인은 보증금을 떼였다.
전세사기, 집주인은 물론 공모한 공인중개사도 처벌
또한, 이번에 적발된 빌라 건축주 이 씨의 경우 주변 매매시세보다 비싼 전세금에 세입자 500여 명을 모아, 총 1000억여원의 보증금을 받았다. 세입자들이 한꺼번에 전세금 반환을 요구하면 돌려줄 수 없는 상태였다. 주변 공인중개사들은 전세금의 10%씩을 나눠 갖는 조건으로 세입자 모집을 도왔다. 이 씨는 계약 직후 다른 임대인 박 씨에게 모든 주택을 팔고 잠적했다. 박 씨 역시 자기자본 없는 ‘무자력 임대인’이어서 세입자들은 계약기간이 끝나도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없었다.
국토교통부는 이처럼 ‘전세사기’가 의심되는 거래 1만3,961건을 경찰청에 제공했다고 24일 밝혔다. 국토부·주택도시보증공사(보증공사·HUG)·한국부동산원이 지난달부터 특별단속을 벌여 분석한 결과다. 건축주와 중개사가 짜고 ‘깡통전세’ 세입자를 모집한 뒤 잠적하거나, 수백 채를 임대하면서도 보증금 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집주인 등이 여기에 포함됐다. 최근 주택시장이 하강기에 접어들면서, 보증금 돌려줄 능력 없이 여러 채를 사들였던 집주인들이 전세금을 떼먹을 위험이 커졌다.
국토부 관계자는 “집주인은 물론 공모한 공인중개사도 사기나 공인중개사법 위반 혐의 등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손바뀜이 없던 신축 빌라의 경우 기존 매매·전세 시세가 형성돼있지 않아 세입자들이 과도하게 높은 보증금에 전세금에 계약할 위험이 있다. 주변 빌라의 시세와 면밀히 비교해 계약하기를 권한다”고 말했다.